또 의병을 일으킬 당시의 일정 부분과 계략은 모두 이괄(李适)의 공이었다. 그러나 김류(金瑬) 등 50명은 정사공신에 책록되고 김자점(金自點), 심기원(沈器遠)은 1등이 되었으나 오직 이괄은 2등이 되었으므로 이괄이 불평하였다. 이때에 북쪽 변방에 우환이 있었다. 인조(仁祖)께서 장만(張晩)을 도원수(都元帥)에 제수하여 부(府)를 평양(平壤)에 설치하고 이괄을 평안 병사(平安兵使) 겸 부원수(副元帥)로 하여 영변(寧邊)에 주둔하게 하니 이괄이 더욱 앙심을 품고 은밀히 다른 모의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