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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사략 권4
  • 근세사(近世史) - 조선기(朝鮮記) 하
  • 만주(滿洲)의 침략과 강화
  • 만주 태종이 즉위하고 국호(國號)를 청(淸)이라 하다

만주 태종이 즉위하고 국호(國號)를 청(淸)이라 하다

영아이대(英俄爾岱)가 유시를 내린 문서를 빼앗아 태종(太宗) 황태극(皇太極)에게 바쳤다. 태종이 여러 패륵(貝勒), 대신과 회의하였는데, 그 무리가 모두 조선(朝鮮)의 결의를 알게 되어 조선을 공격하자고 하였다. 이때 태종은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의 존호를 받고 국호는 청이라 하고 패륵과 대신이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1)세 번 큰 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으로, 청나라 시대에 황제나 대신을 만났을 때의 예법이다.를 행하였다. 때마침 조선 사신 나덕헌(羅德憲)【춘신사(春信使)】, 이곽(李廓)【회계사(回啓使)】이 심양(瀋陽)에 있어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더니 청나라 사람이 나덕헌을 갖은 방법으로 욕되게 하였으나 끝내 따르지 않았다. 태종이 “이는 우리에게 사신을 죽이고 맹세를 위배하였다는 명분을 씌우고자 함이라.”고 하고 곧바로 용서하여 돌려보냈다. 이때 서신을 보내 그 부당함을 책망하여 “죄를 후회하거든 자제를 인질로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대군을 일으켜 날을 정해 국경에 이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그 말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덕헌, 이곽 등은 만주(滿洲)의 서신을 받아들고 왔다 하여 유배 보냈다. 이조 판서(吏曹判書) 최명길(崔鳴吉)만 홀로 화의를 주장하니 부교리(副校理) 오달제(吳達濟)와 교리(校理) 윤집(尹集)이 상소하여 그 그릇됨을 통렬하게 논하였다. 만주를 배척하는 기염이 조야에 진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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