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앞서 송시열이 왕의 뜻을 거스른 후부터 남인(南人)의 공격이 더욱 심하여 여러 차례 죽이기를 청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사사하였다. 민암(閔黯), 이수징(李壽徵), 이현기(李玄紀), 허적(許積), 오정창(吳挺昌) 등은 관작(官爵)을 회복하고 김석주(金錫胄) 등의 보사훈(保社勳)은 삭탈하였다. 대체로 왕비를 폐위하고 동궁을 책봉한 일에 남인 중 죄를 당한 자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인은 이 일로 인해 서인(西人)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세력을 크게 신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