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부터 5~6년은 남인(南人)이 오로지 국정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왕이 점점 왕비를 폐위한 일을 후회하여 남인의 거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때마침 서인(西人) 김춘택(金春澤), 한중혁(韓重爀) 등이 폐위된 왕비를 복위하고자 하다가 일이 누설되었다. 우의정(右議政) 민암(閔黯)이 큰 옥사를 일으켜 반대 도당을 제거하고자 하였더니 왕이 민암 등을 파직하고 남구만【소론(少論)】을 영의정(領議政)에 제수하였다. 그 외 신여철(申汝哲), 윤지완(尹趾完), 유상운(柳尙運) 등을 등용하고, 드디어 폐후 민씨(閔氏)를 복위하고 장씨(張氏)의 옥새를 거두어 희빈(禧嬪)의 옛 작위를 내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