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6~7년 동안 정사가 문란하여 백성의 원망이 많았다. 이에 민승호(閔升鎬), 조영하(趙寧夏) 등이 왕께 친정(親政)할 것을 주청하였다. 때마침 최익현(崔益鉉) 등이 대원군(大院君)의 실정을 통렬히 논하자 대원군이 노하여 우의정(右議政) 박규수(朴珪壽)와 의논하였는데, 박규수 또한 정권을 되돌려주라고 권하였다. 대원군이 노하여 덕산(德山)으로 가 머물자 왕이 곧 맞아들이셨다. 그러나 정권은 이미 민씨(閔氏)에게 돌아가 대원군의 세력이 모두 제거되었다. 또 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日本)과도 비로소 조약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