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러시아[露國]가 점점 세력을 신장하여 공사(公使) 베베르[韋貝]가 육로 무역을 열고자 하니 뮐렌도르프[穆麟德]가 또한 도왔다. 청(淸)나라 이홍장(李鴻章)이 그 이익과 손실을 논하고 또 뮐렌도르프를 청나라에 소환하니 그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다시 미국인[米人] 데니[茶爾]가 왔는데 이 역시 이홍장의 천거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청나라를 위해 한 일은 없었다. 데니는 한양[京城]에 이르자 『청한론(淸韓論)』을 저술하여 청나라 조정의 행한 바와 위안스카이[袁世凱]의 행위를 비난하고 또 조선(朝鮮)의 독립은 러시아에 의지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베베르가 이 기회를 틈타 고종(高宗) 25년(1888) 무자(戊子), 지금으로부터 18년 전1)원문에는 19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18년 전으로 바로잡는다.에 러시아와 육로 통상 조약(陸路通商條約)을 요청하여 다음 해에 경흥(慶興)【함경도】시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