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동명왕(東明王)이 동부여(東扶餘)에 있을 때에 예씨(禮氏)를 아내로 맞이하여 유리(類利)를 낳았다. 나중에 유리가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자 왕이 크게 기뻐하여 태자로 삼았다. 비류 형제가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오간(烏干) 등 10명을 데리고 남쪽을 돌아다니다가, 비류는 미추(彌鄒)【지금의 인천(仁川)】에 정착하고, 온조(溫祚)는 위례성(慰禮城)【지금의 직산(稷山)】1)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나 대체로 서울 북한산 인근 지역으로 보고 있다.에 도읍을 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