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古爾王) 때에 왕인이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가지고 일본에 가니 일본 왕[日本主]이 기뻐하여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에 앞서, 백제(百濟)의 왕자 아직기(阿直岐)가 경전(經傳)에 능통하였는데 일본에 가니 일본 왕이 그의 아들 치랑(稚郞)으로 하여금 배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너희 나라의 박사(博士) 중에 너보다 현명한 자가 또 있는가?”라고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왕인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으뜸이다.”라고 하였다. 왕인이 일본 왕의 초청을 받아 가니 일본에 문자가 비로소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