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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묘

홍유후 설총묘(傳 弘儒侯 薛聰墓)는 원효(元曉, 617~686)와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의 묘이다. 경북 경주시 보문동에 위치한 묘는 비문과 비석은 없지만 예로부터 진평왕릉(眞平王陵)의 동쪽 보문리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봉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흙 속에 묻힌 호석(護石)의 일부가 보이기도 한다. 최근 경주⋅순창 설씨 대종회에서 상석과 묘비를 만들고, 외곽에 울타리를 둘러 관리하고 있다.

설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원효불기(元曉不覊)」의 기록을 통해 654~66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6두품 출신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그는 나면서부터 재주가 많고, 경사(經史)에 박학(博學)하였으며, 신라 말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라10현(新羅十賢)의 한 사람으로, 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의 3대 문장가로 꼽힌다. 특히, 이두(吏讀)의 정리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1)을 풍자하는 내용의 글인 「화왕계(花王戒)」를 지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설총열전(薛聰列傳)」에 실려 있다.

통일신라는 유교적 정치이념에 근거하여 왕권강화를 꾀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6두품 출신 학자들이 유학의 수준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설총 역시 훗날 학문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1022년(고려 현종 13년)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諡號)를 추증(追贈)받았다. 또한 최치원과 함께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었으며, 1623년(조선 광해군 1년)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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