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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영주 부석사 (塋州 浮石寺)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에 위치한 절이다.

부석사는 676년(문무왕 16년) 2월, 의상(義湘, 625~702)이 문무왕(文武王 : 재위 661~681)의 명령으로 창건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부석사의 창건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의 등주(登州)에 도착한 의상은 선묘(善妙)라는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의상에게 청혼하였으나, 의상은 그녀를 감화시켜 깨달음을 주었다. 그녀는 곧 당나라가 신라를 침략할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의상은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과 함께 가지 못하자 바다에 몸을 던져 의상을 보호하는 용(龍)이 되었다. 귀국 후 의상이 절을 짓기 위해 봉황산에 이르자 도둑의 무리가 절을 계속 허물었다. 이에 분노한 용이 된 선묘는 큰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그들을 위협하자, 도둑들은 혼비백산하고 달아나 의상이 절을 창건하게 도왔다고 한다. 이에 의상은 용이 된 선묘를 기념하기 위해 부석사라고 절의 이름을 지었고,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 뒤에 있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그것이라고 한다.

부석사는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인 의상이 이곳을 중심으로 화엄을 널리 설법하여 부석존자(浮石尊者)라고 칭해질 정도로 화엄십찰(華嚴十刹) 가운데 중심이 되는 도량이었다. 그 뒤 의상의 제자인 신림(神琳)이 머물렀고, 신라 말 대표적인 선사들 중 799년(원성왕 15년)에 적인 혜철(寂忍 惠哲, 785~861), 813년(헌덕왕 5년)에 낭혜 무염(朗慧 無染, 801~888), 그리고 840년(문성왕 2년)에 징효 절중(澄曉 折中, 826~900)이 부석사에서 『화엄경(華嚴經)』을 배웠다고 전한다.

부석사 안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18호),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 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 국보 제46호), 무량수전 앞 석등(無量壽殿 앞 石燈, 국보 제17호)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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