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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경주 석굴암(慶州 石窟庵)은 경북 경주시의 토함산 중턱에 있는 인공 석굴이다. 창건 당시에는 석불사(石佛寺)라고 하였다. 석굴암 석굴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대성효이세부모신문왕대(大城孝二世父母神文王代)」에 잘 나타나 있다. 이에 의하면, 대상(大相) 김대성(金大城, 700~774)이 751년(경덕왕 10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세우고, 전생(前生)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세웠다고 한다.

석굴암 석굴은 1900년대 초반 3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다. 제1차는 1913~1915년, 제2차는 1917년, 제3차는 1920~1923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제1차 중수는 1913년 10월에 착공하여 석굴을 완전히 해체하고, 시멘트를 사용한 석굴재조립공사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시멘트를 부가한 중수공사는 석조물을 약화시켰고, 석굴 내부에 누수현상을 초래했다. 그리하여 1917년 6월부터 제2차 중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이 공사는 원형의 돔 표면에 대한 응급조치로 마무리되면서 3년 뒤 다시 중수공사를 하게 되었다. 제3차 중수공사는 1920년 9월 3일 착수하여 1923년까지 이루어졌지만, 제3차 중수공사 이후에도 결로(結露)현상과 침수현상은 계속되었다. 이후, 1962~1964년이 되어서야 문화재관리국의 주도로 우리의 힘에 의한 전면적인 중수공사가 시작되었다.

석굴암 석굴은 전실(前室)과 주실(主室)이 통로로 연결된 구조로, 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실의 좌⋅우 벽에는 4구(軀)의 팔부신장상(八部神將像)이 마주보고 있으며, 이어지는 통로의 입구 벽면에는 2구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조각되어 있다. 주실과 연결되는 통로에는 좌⋅우 벽으로 2구씩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으며, 주실의 입구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2기의 석주(石柱)가 있다. 원형의 평면으로 조성된 주실의 중앙에는 석련대(石蓮臺) 위로 본존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본존불 바로 뒤로 중앙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觀音菩薩像)이 조각되어 있고, 그 좌⋅우로 십대제자입상(十大弟子立像)이 각각 5구씩 있으며, 십대제자입상의 좌⋅우로 보살상이 각각 2구씩 장식되어 있다. 또한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위로 연꽃모양의 광배가 있으며, 광배의 좌우 옆으로 5개의 감실(龕室) 안에 문수(文殊)⋅유마(維摩)⋅지장(地藏) 및 기타의 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천장은 아주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돔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경주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종교⋅예술 분야뿐 아니라, 건축학⋅수리학⋅기하학 등의 과학적인 분야가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있으며,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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