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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종이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범종이다. 원래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의 원찰(願刹)인 봉덕사(奉德寺)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봉덕사종 혹은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른다.

성덕대왕신종은 각 부분의 장식이 화려하면서도 섬세하며,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鐘)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이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연꽃모양을 장식한 음통(音筒)이 있으며, 그 밖으로 종을 매다는 고리인 뉴(紐)는 용(龍)의 머리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음통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종의 몸통 위쪽과 아래쪽에는 당초문(唐草文)을 넓은 띠처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아래에는 보상당초문으로 장식한 4곳의 유곽(乳廓) 안으로 연꽃모양으로 조각된 9개의 유두(乳頭)가 장식되어 있다. 이 유곽 밑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2쌍의 비천상(飛天像)이 있으며, 그 사이로 8잎의 연화당좌가 있다. 2구(軀)씩 마주보는 4구의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모습으로, 주위에 보상화(寶相花)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하늘 위로 천의(天衣)와 영락(瓔珞) 등이 휘날리고 있다.

성덕대왕신종에는 장문(長文)의 명문(銘文)이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종에 기록된 명문을 보면,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찬양하고 영원히 기리고자 이 종을 만들었으며, 종소리와 함께 온 나라가 평화롭기를 바란다는 염원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경덕왕이 종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恭王, 재위 758~780)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년)에 구리 12만근을 들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은 종명(鐘銘)의 효시(曉示)가 된다. 또한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종의 제작자와 글쓴이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기록 자료로써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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