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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의상대사 영정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에 소장되어 있는 의상(義湘, 625∼702)의 초상화이다.

의상은 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한신(韓信)이다. 19세 때 경주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하였고, 650년(진덕여왕 4년)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지만, 체포되어 귀국하였다. 661년(문무왕 1년) 당나라에 가서 중국 화엄종의 제2조 지엄(智儼, 602∼668)으로부터 8년간 화엄사상을 배웠고, 제3조 현수(賢首)와도 교류하였다. 671년(문무왕 11년)에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친견(親見)하고 낙산사(洛山寺)를 창건하였는데, 당시의 발원문인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이 전해진다. 676년(문무왕 16년)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기까지 화엄사상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포교활동을 하였다. 이후 부석사에서 화엄종의 교리를 전파하면서 제자를 양성하였고, 오진(悟眞)⋅지통(知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 ‘의상십철(義湘十哲)’이라 불리는 고승(高僧)들을 배출하였다.

의상과 제자들에 의해 화엄사상이 널리 확산되고, 부석사를 비롯하여 비마라사(毘摩羅寺), 해인사(海印寺), 옥천사(玉泉寺), 범어사(梵魚寺), 화엄사(華嚴寺), 보원사(普願寺), 갑사(岬寺), 국신사(國神寺), 청담사(靑潭寺) 등 소위 ‘화엄십찰(華嚴十刹)’이 창건되었다. 의상은 702년(효소왕 11년) 7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고, 이후 고려 숙종(肅宗, 재위 1095~1105)이 ‘해동화엄시조 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 圓敎國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그는 중국과 일본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친 학승(學僧)이었지만, 매우 적은 저술만을 남겼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외에 「백화도량발원문」,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 「투사례(投師禮)」 등의 짧은 글들만 전해진다.

의상의 주요사상은 화엄사상으로,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일체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다(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라는 것은 우주의 다양한 삼라만상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뜻한다. 즉, 모든 것은 국왕을 중심으로 통합해야한다는 사상으로, 이는 통일 이후의 혼란한 신라 사회에서 왕권의 안정과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영정의 하단에는 “건륭삼십이년봉안우금정산범어사…(乾隆三十二年奉安于金井山梵魚寺…)”라는 화기(畵記)가 쓰여 있어서, 1767년(영조 43년)에 영정을 제작하여 금정산 범어사에 봉안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 및 조선전기 양식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작품으로, 조선 후기의 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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