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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江陵 掘山寺址)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굴산사는 851년(문성왕 13년)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중심 사찰이었다.

범일은 831년(문성왕 8년) 당(唐)으로 건너가 제안선사(齊安禪師)로부터 법을 받고, 846년(문성왕 8년) 귀국하여 선종의 가르침을 이어갔다. 귀국 후 사굴산문을 개창하고 행적(行寂, 朗空大師, 832~916), 개청(開淸, 835~930), 신의(信義) 등을 제자로 두었다. 행적은 중국으로 가 경제(慶諸, 807~888)의 법을 받고 855년(헌강왕 11년)에 귀국하여, 김해부(金海府)의 소충자(蘇忠子, 일명 蘇忠至)⋅소율희(蘇律熙)의 후원을 받아 불법을 포교하였다. 개청은 범일의 아래 있다가 889년(진성왕 3년) 강릉 보현사(普賢寺)에 거주하면서 명주군사(溟洲郡司) 왕순식(王順式)⋅민규(閔規)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후에는 왕건(王建)의 귀의를 받았다. 신의는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범일의 제자들의 활동을 볼 때, 사굴산문은 강릉과 오대산 일대에 세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태풍 루사(Rusa)로 인해 수해를 입어 긴급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사찰의 범위와 유구의 보존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수해로 1⋅2문화층이 유실되기는 하였지만, 가장 이른 시기인 3문화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법당지(法堂址), 승방지(僧房址), 회랑지(回廊址), 탑지(塔址) 등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연차적으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학술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굴산사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86호)가 있으며, 이 당간지주는 현재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당간지주는 2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몸은 4면으로 되어 있으며 윗부분은 뾰족하게 마무리하였다. 몸의 위⋅아래로 각각 하나씩 원형의 구멍이 뚫어져 있다. 이 외에도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僧塔, 보물 제85호)과 석불좌상(石佛坐像,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8호)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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