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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 僧塔)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승려 철감선사 도윤(道允, 798~868)의 부도이다.

도윤은 825년(헌덕왕 17년)에 중국에 들어가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법제자인 남전(南泉, 748~835)의 법을 받아 847년(문성왕 9년)에 귀국하였다. 한때 풍악(楓嶽)에 거주하면서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의 귀의를 받았으나 능주(綾州)의 쌍봉사(雙峯寺)로 이주하였다. 그의 제자 절중(折中, 826~900)은 사자산 선사 석운(釋雲)의 청을 받아들여 영월 흥녕선원(興寧禪院)에 머물었고, 이후 헌강왕(憲康王, 875~886)과 정강왕(定康王, 886~887)의 귀의를 받으면서 사자산문으로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 절중의 제자로는 경유(慶猷)와 여종(如宗) 등이 있다.

철감선사 승탑은 높이가 2.3m이고, 평면은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부도와 마찬가지로 팔각원당형이지만, 다른 탑들보다 각 부분의 세부조각이 아름답다. 3단의 기단부는 구름과 용, 사자 등을 장식하였다. 탑신(塔身)은 연화받침을 받치고 그 위로 팔각형의 몸체에 사천왕상(四天王像)과 비천상(飛天像)을 새겨 넣었다. 옥개석(屋蓋石)은 기왕, 서까래, 막새의 표현이 완벽하게 목조건물을 재현하였다. 상륜부는 부재를 꽂았던 흔적만 남아 있다.

철감선사 승탑은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상당히 화려하고 섬세하며 비례와 구성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하대의 석조 공예기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의 수양을 강조한 선종이 유행하면서 많은 불탑이 제작되지 않고 부도 중심의 건축물이 제작되었는데,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이 이 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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