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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守眉禪師碑)는 통일신라시대의 선승인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와 도갑사를 중창한 조선시대의 수미선사(守眉禪師)를 추모하는 비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1653년(효종 4년)에 완성하였다.

도선국사는 827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5세가 되던 해 출가하여 화엄사(華嚴寺)의 승려가 되었다. 도갑사를 세워 많은 제자들에게 불법(佛法)을 가르쳤으며, 이후 전남 광양시의 백계산(白鷄山)에 있는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제자들에게 법문을 가르쳤다. 도선국사는 당으로부터 풍수사상을 받아 들여 제자들과 함께 국토의 자연환경을 인문지리학적인 지식으로 재해석하여, 신라사회에 맞는 체계적인 풍수도참설을 만들었다. 이는 그때까지 경주 중심으로 운영해 오던 행정조직에서 벗어나 지방 중심의 행정조직으로 재편성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여 신라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고려 개국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수미선사는 조선 전기의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여 도갑사에서 불경을 공부했다. 20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서 수도하였다. 이후 1457년(세조 3년)에 도갑사로 들어가 절을 중수하였으며, 다음해인 1458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螭首)로 구성된 비석으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주변의 보호각 안에 있다. 높이는 약 5.17m, 폭은 1.42m이며 표면에는 1,500여자가 음각되어 있다. 귀부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고 있으며 크게 뜬 눈과 큼직한 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빨까지 자세하게 조각하였다. 등에는 평행한 사선문으로 장식하였으며, 비좌(碑座)가 상당히 넓고 크게 배치되어 등의 중반까지 내려와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면의 상단에는 당시 형조판서 김광욱(金光煜, 1580~1656)이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이라고 제액을 적었다. 좌측에는 영의정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이 지은 비문을 예조판서 오준(吳竣, 1587~1666)이 글씨를 썼는데, 총 16행 714자이고, 비제(碑題)는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幷序)’이다. 이수는 연화좌 위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을 아주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이 비석은 한 사람만을 기리는 일반적인 비석과는 달리 두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이채로우며, 거대한 비석을 만들기 위해 18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석조 공예 기술의 제작사적인 연구에 좋은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조선 후기의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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