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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 순절도

「동래부 순절도(東萊府 殉節圖)」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1592년(선조 25년) 4월 15일 동래성(東萊城)에서 왜군(倭軍)의 침략에 대응하다 순절한 부사(府使) 송상현(宋象賢, 1551~1592)과 군민들의 항전을 묘사한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그린 이 그림은 1709년(숙종 35년) 처음 그렸던 것을 동래 부사(東萊府使) 홍명한(洪名漢)이 1760년(영조 36년) 동래부 감영 소속 화가 변박(卞璞)을 시켜 다시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96㎝, 세로 145㎝이다.

1592년 4월 13일과 14일에 걸쳐서 부산진성(釜山鎭城)을 함락시킨 왜군은 바로 다음 날인 15일 동래부(東萊府)로 향하였다. 송상현을 비롯한 군민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였으나, 전력 차이로 인하여 끝내 왜군에게 동래성을 함락당하고 말았다. 이에 송상현과 양산 군수(梁山郡守) 조영규(趙英圭, ?~1592)는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순절하였다. 당시 경상 좌병사(慶尙左兵使) 이각(李珏)은 울산에서 병사를 이끌고 동래부로 왔으나 조영규가 “적의 군세가 수만이나 된다. ”는 보고를 하자 송상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지원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성을 빠져나갔다. 그 후에도 이각은 왕을 모시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가다가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에게 참수를 당하였다.

「동래부 순절도」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기법을 사용하여 치열했던 교전의 장면을 화폭에 나타내었다. 특히 여러 가지 사건을 한 장의 그림에 배치하였는데, 이것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림의 중심에 동래성이 둥글게 자리 잡고 있고 남쪽 성루를 중심으로 동래 병사들이 수비하고 있으며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왜병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성곽 아래쪽으로는 왜군과 죽음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고, 성곽 안쪽 중심에는 붉은 조복을 입고 북쪽을 향해 앉아있는 송상현의 순절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북문 밖으로는 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경상 좌병사 이각의 무리들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편 동래부 전투 당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 ?~1600)는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길을 빌려 달라(戰則戰矣 不戰則 假我道). ”라고 요구하였는데, 이에 대해 송상현은 “싸우다가 죽을 수는 있지만 길을 빌려주는 것은 어렵다(戰死則 假道亂). ”라고 하였다. 「동래부 순절도」에 보이는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假我道)'라는 내용의 목패(木牌)는 왜군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조선 침입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길을 빌려주는 것은 어렵다(假道亂)'라는 내용의 목패는 송상현의 비롯한 동래성 관민의 결사 항전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림에서는 조선과 일본 양측의 무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부녀자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왜군들에게 기왓장을 던지자 이에 조총을 겨누는 왜군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기록화로서 당시의 극적인 상황 및 순절한 송상현 및 조영규, 그리고 동래부민들의 저항과 일본인들의 전력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역사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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