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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란도

「임진전란도(壬辰戰亂圖)」는 1834년(순조 34년)에 화사(畵師) 이시눌(李時訥)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부산진과 다대포진의 전투 및 주변 지리를 묘사한 족자 그림이다. 비단에 그려져 있으며, 그림의 크기는 141cm× 85.8cm이고, 족자까지 합하면 172cm× 99cm이다.

이 그림은 다대포진과 부산진의 두 성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를 담고 있는데, 화면의 중심과 아래편에 각각 부산진과 다대포진의 전투가 그려져 있다. 위에서 내려 보는 구성방식이나 색채 등으로 볼 때 「부산진 순절도(釜山鎭 殉節圖)」와 「동래부 순절도(東萊府 殉節圖)」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우측 하단에는 ‘만력 임진후 이백사십삼년(萬曆 壬辰後 二百四十參年) 갑오육월일(甲午六月日) 화사(畵師) 본부(本府) 군기감관(軍器監官) 이시눌(李時訥)'이라는 관지(款識)가 적혀 있어서, 1834년 6월에 화원 이시눌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임진전란도」는 기록화답게 그림 곳곳에 설명을 부기(附記)하여 당시 상황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우선 조선군에 비해 왜군의 수를 훨씬 많이 그려 넣어 군사적으로 조선이 열세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인물들은 계급과 역할에 따라 그 크기를 달리해서 그리고 있으며, 주요 상황에 대한 그림과 함께 전투에서 순절한 인물들이 후대에 추숭되는 과정이 곳곳의 여백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부산진의 함락과 함께 순절한 부산진 첨절제사(釜山鎭 僉節制使) 정발(鄭撥, 1553~1592)과 그의 첩 애향(愛香, ?~1592), 노비 용월(龍月, ?~1592) 및 함께 순직한 사람들의 비석과 제단을 그렸으며, 좌측 상단에도 다대포 첨절제사(多大浦 僉節制使) 윤흥신(尹興信, ?~1592년)과 함께 순절한 사람들의 비석과 제단을 그려 넣고 설명을 가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40년이 지난 후에 이러한 기록화를 그렸던 것은 부산진과 다대포진 전투를 제시하여 신하와 백성들의 교화를 도모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순절한 인물들에 대한 추숭 과정까지 표현한 것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철저하게 항전하는 신하의 모습 및 그 포상을 보여줌으로써 충절의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또한 유교적 입장에 입각하여 장수를 따라 자결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남성의 충절과 아울러 여성의 정절 역시 강조하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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