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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탈환도

평양성 탈환도(平壤城 奪還圖)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일본에 함락되었던 평양성(平壤城)을 명(明)나라와 조선의 연합군이 탈환하는 내용을 병풍에 그린 그림으로, 채색화이다. 병풍의 폭은 5m이고, 높이는 1.5m이다.

평양성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빠르게 북상한 왜군들에 의하여 1592년(선조 25년) 6월 14일 함락되었다. 이에 조선에서는 명나라 연합군과 함께 7월 15일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1월 2일부터 다시 공격하여, 1월 6일 드디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평양성 전투에 대해서는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당시 평양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 장수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였으며, 명나라는 경략 송응창(宋應昌, 1536~1606)과 제독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이 명군(明軍)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 측은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 1534~1602), 우방어사 김응서(金景瑞, 1564~1624), 좌방어사 정희현(鄭希賢)이 이끄는 8000천 명 규모의 군대에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가 2,200여 명의 승군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자 이여송은 기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모든 장수를 지휘하며, 후퇴하는 자는 목을 베고 먼저 성에 오르는 자에게는 은(銀) 50냥을 준다며 사기를 북돋웠다. 이를 바탕으로 강하게 압박을 가하여 왜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는데, 막다른 궁지에 몰린 왜군이 죽을 힘을 다할 것을 염려하여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퇴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군량과 무기의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여송의 통보를 받은 조선 측은 길을 열어 주었다. 이에 왜군은 봉산(鳳山)으로 향하였으나, 이곳에 주둔하던 왜군은 이미 철수한 상태였기 때문에, 왜군 또한 서울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평양성 탈환은 이전까지 후퇴만 거듭하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그림은 평양성 탈환에 성공한 1953년 1월 전투를 그리고 있는데, 대포 등의 강력한 화력을 이용하여 평양성의 보통문(普通門)과 칠성문(七星門)을 공격하는 명군(明軍)과 이에 맞서 조총과 칼로 대항하는 왜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에 비하여 조선군에 대해서는 명군의 후방을 지원하는 모습을 묘사하였으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아울러 일본군에 비하여 명군을 크게 묘사하는 등 전체적으로 명군의 활약상을 강조하고 있어서, 조선군의 입장에서 전투를 보는 시각으로 이 작품을 그렸다는 평가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를 그린 기록화는 많지 않으나, 대부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데, 이 그림 또한 당시의 전쟁 상황과 무기 및 피해 상황 등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림의 제작 연대와 작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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