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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거북선[龜船]은 왜구(倭寇)의 격퇴를 위해서 돌격선으로 고안된 장갑선(裝甲船)의 일종인데, 철갑선으로써의 거북선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창제하여 실용화하였다.

거북선[龜船]에 관한 기록은 『태종실록(太宗實錄)』에서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1413년(태종 13년)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귀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연습을 하는 모양을 보았다”가 그 첫 등장이다. 이어 1415년(태종 15년)에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 1367~1426)이 “귀선(龜船)의 전법은 많은 적에 충돌하더라도 적이 해칠 수가 없으니 결승의 양책이라 할 수 있으며, 거듭 견고하고 정교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의 도구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을 상소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이미 조선 초기부터 귀선이 충돌선으로써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철갑선으로써의 거북선이 등장한 것은 1592년(선조 25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이순신이 ‘창제귀선(創制龜船)’을 건조하면서이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창제귀선은 이순신의 고안에 따라 군관(軍官) 나대용(羅大用, 1556~1612) 등이 실제로 건조하였으며, 임진왜란 초반 잇따른 해전에서 함대의 선봉이 되어 돌격선의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의 투옥과 더불어, 그리고 그가 전사한 뒤에는 거북선의 가치 또한 떨어지고 말았다. 임진왜란 당시 모든 기술이 동원되어 만들어졌던 거북선은 이후 기술적인 전승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조선 후기까지 시대에 따라 모습만 변모한 채로 각 수영(水營)에 남아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순신의 조카인 이분(李芬, 1566~1619)은 거북선의 모습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남겼는데, “그리고 또 전선을 창작하니, 크기는 판옥선(板屋船)만한데, 위에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 십자모양의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칼송곳[刀錐]을 꽂아 사방으로 발을 붙일 곳이 없도록 했으며,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입은 총혈(銃穴)이 되게 하고, 뒤는 거북꼬리처럼 되었는데 그 밑에도 총혈이 있으며, 좌우에 각각 여섯 개의 총혈이 있다. 대개 그 모양이 거북의 형상과 같아 이름을 ‘귀선’이라 하였다. 뒷날 싸울 때에는 거적[編茅]으로 송곳[錐刀]으로 위를 덮고 선봉이 되어 나아가는데, 적이 배에 올라와 덤비려 들다가는 칼송곳 끝에 찔려 죽고, 또 적선이 포위하려 하면 좌우 앞뒤에서 일제히 총을 쏘아 적선이 아무리 바다를 덮어 구름같이 모여들어도 이 배는 그 속을 마음대로 드나들어 가는 곳마다 쓰러지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에 전후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것으로 항상 승리한 것이었다.”라고 하여 돌격선으로써의 거북선의 역할 및 임무를 짐작하게 하였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북선은 고증에 따라 만든 모형이며, 1980년 진해 해군기지에서 최초로 진수된 실물 크기의 복원귀선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도설 중 주로 전라 좌수영(全羅左水營) 귀선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철갑과 철첨을 더하여 이순신의 거북선을 상징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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