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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

판옥선(板屋船)은 1555년(명종 10년)에 개발된 군함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맹활약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북선의 모형(母型)이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 전기의 군선(軍船)에는 대맹선(大猛船)⋅중맹선⋅소맹선의 세 종류가 있었다. 맹선들은 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 때 군용과 조운(漕運)에 겸용할 수 있도록 규격을 통일한 것으로 몸집은 컸으나 기동력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전투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명종(明宗, 1534~1567, 재위 1545∼1567) 대의 삼포왜란(三浦倭亂)⋅사량왜변(蛇梁倭變)⋅을묘왜변(乙卯倭變) 때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군함을 개발한 것이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은 선체 위의 전면에 2층으로 꾸민 옥선(屋船)으로, 가목 위에 깔아 놓은 배 안의 갑판과 상장 위에 깔아 놓은 상장 갑판의 두 개의 갑판을 가진 2층 구조로 된 전투함이다. 그러므로 노역을 하는 격군(格軍)들은 아래 위 두 갑판 사이의 안전한 장소에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은 채 안심하고 노를 젓고, 군사들은 상장 갑판 위 넓고 높은 장소에 자리 잡고 싸우게 되므로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판옥선은 개발된 지 37년 만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그 진가를 발휘하였는데, 125명 이상을 태울 수 있었으므로 80명을 정원으로 하는 일본 군선보다 일단 많은 수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구조도 매우 튼튼했고, 특히 노역을 전담하는 격군과 전투에 임하는 군사를 갈라놓아 서로 각자 소임을 다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적이 선상에 기어올라 침입하기 어려웠다. 포를 높게 설치한 덕에 유리한 자리에서 적을 포격할 수 있는 것도 판옥선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판옥선의 수가 매우 적었다는 것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처음으로 출동한 옥포해전(玉浦海戰)에 동원된 판옥선은 겨우 28척(그 중 4척은 경상우도의 것)이었고, 그 후 가장 많은 척수가 확보되었을 때도 180여 척에 지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소유한 전투함으로는 몇 척의 거북선을 제외하면 오직판옥선과 정원이 몇 명에 불과한 전투함의 부속선들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판옥선의 뛰어난 전투 능력이 그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판옥선은 임진왜란 때의 활약 외에도 상장 갑판 윗부분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둥그런 개판을 덮어 전사까지 보호한 특수 군선인 거북선의 모형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도 주력함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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