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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왜공신첩

참왜공신첩(斬倭功臣帖)은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참여하여 왜군의 목을 벤 사람을 공신(功臣)으로 올린다는 증서를 가리킨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 가도입명(假道入明)을 내세운 왜군이 침입하면서 발생한 전쟁이다. 그동안의 내전(內戰)을 통해 병법과 무예, 조총술 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왜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총 20만 명에 이르는 왜군의 병력에 비하여, 제대로 된 군사 훈련조차 받지 못한 조선군은 크게 대항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이에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한지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였고, 60일 만에 개성, 평양 등을 함락하여 함경도까지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 일본군의 파죽지세에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개경을 지나 의주까지 파천(播遷)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전라도 해안으로 진출하는 왜군을 막아내며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육지에서도 관군과 의병, 그리고 승병들이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한편 선조는 파천 도중 명(明)나라에 구원 요청을 하였으며, 이에 명나라는 파병을 결정하고 송응창(宋應昌, 1536~1606)과 이여송(李如松, 1549~1598) 등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전세의 역전을 가져오는 평양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선조는 한글 교서를 내려서 왜군의 포로가 되었거나 왜군에 협력하는 백성들을 회유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참왜공신첩(斬倭功臣帖) 등을 통해서 왜군을 무찌르는데 앞장서도록 독려하였다. ‘절지수(節祗受)’라고 적힌 공신첩(功臣帖)에는 목을 벤 왜군의 수와 공신에 임명한다는 내용 및 공신첩을 내린 관리의 직함과 수결(秀潔) 등이 적혀 있다. 제시된 공신첩은 1593년 3월 2일 청도(靑道) 한랑(閑良) 박지남(朴智男)을 3등 공신에 기록한다는 증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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