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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함경도 북평사(北評事) 최창대(崔昌大, 1669~1720)가 1707년(숙종 33년) 함경도 길주군 임명(臨溟)에 건립한 비석으로 정문부(鄭文孚, 1565~1624)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함경도에서 활동한 내용을 적고 있다.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인 북관대첩비의 글자 수는 1,500자에 이르는데, 그 내용은 정무부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59~1611)가 거느린 왜군을 무찌른 내용 및 임진왜란 때 함경도로 피난한 두 왕자를 반란을 일으켜 왜적에게 넘긴 국경인(鞠敬仁, ?~1592)을 처형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1905년 러일 전쟁 때 함경도 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 예비사단 여단장 소장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가 주민들을 협박하여 북관대첩비를 파내 일본으로 옮겨 도쿄(東京)의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방치하였다. 그러나 비문에 이름이 있는 의병의 후손들이 일본 정부에 청원서를 내는 등 반환 운동을 벌인 끝에 2005년 10월 20일에 한국으로 돌아 왔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치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다가, 2006년 3월 1일 원래 있던 곳에 비석을 안치하기 위하여 북한으로 전달하였다

임진왜란 중에 함경도 및 전국 각 지역에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의병이 일어났으며 여러 번 승전을 거두었다. 국가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이러한 점을 포상하는 한편 북관대첩비와 같은 비석을 세우며 백성들의 충절을 독려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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