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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비

표충비(表忠碑)는 경상남도 무안에 위치한 비로,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01)의 충절을 기리고 있으며, 일명 ‘사명대사비(四溟大師碑)’라고도 불린다. 크기는 높이 약 4m, 너비 약 1m, 두께 54.5cm이다.

사명대사는 풍천 임씨(豊川任氏)로, 속명은 응규(應奎)이고, 자는 이환(離幻)이며,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승병을 모집하여 스승인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휘하로 들어가 명(明)나라 군사와 협력하여 평양을 수복하고 왜군을 무찔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명나라 장수 마귀(麻貴)와 함께 울산(蔚山)의 도산(島山)과 순천(順天) 예교(曳橋)에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1604년(선조 37년) 국왕의 친서를 휴대한 후,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강화를 맺고 이듬해 전란 때 잡혀간 조선인 3,000여 명을 인솔하여 귀국하였다.

이러한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42년(영조 18년)에 만든 표충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며,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사명대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과 서산대사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았는데,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비문을 짓고, 김진상(金鎭商, 1684~1775)이 글씨를 썼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兪拓基, 1691~1767)의 글씨이다. 한편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로도 유명하다.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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