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
  • 시대별
  • 조선 시대
  • 왜란과 호란의 극복
  • 이삼평 비

이삼평 비

도조 이삼평 비(陶祖李參平碑)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중에 포로가 되어서 일본에 끌려간 도공 이삼평(李參平, ?~1655)을 추모하는 비석으로 일본과 충청남도 공주에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6년(선조 29년) 사가번(佐賀藩)의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6~1618)는 조선에서 철군하면서 조선 도공들을 포로로 피랍하였는데, 그 가운데에 이삼평도 있었다. 일본의 가라쓰(唐津)에 도착하여 오기군(小城郡) 다쿠촌(多久村)에 살면서 가나가에 산베이(金ヶ江三兵衛)라는 이름을 얻은 이삼평은 1616년 근처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고령토를 발견하였다. 이에 이삼평은 155가구의 도공들을 이끌며 시라카와텐구(白川天狗) 계곡 부근으로 이주하여 처음으로 순백의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는데, 이것은 일본 도자기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전에 아리타(有田) 지역에서 생산되던 도기들이 표면이 거칠었던 것에 비하여, 이삼평의 백자는 고밀도 감촉의 매끈한 자기로써 이때부터 일본에서 자기질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는 지명을 따 아리타야키(有田焼)로 이름 붙여졌으며, 12㎞ 떨어진 이마리(伊萬里) 항구를 통하여 일본 전역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아리타 도자기는 반출항의 이름을 따서 이마리야키(伊萬焼)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리타 사람들은 이삼평이 가마를 개화한 지 300년이 되는 1916년 사가현의 도잔신사(陶山神社)에 그를 기념하는 비를 세웠다. 석비 뒷면에 이삼평을 ‘대은인’이라고 적고 있어 아리타 사람들이 얼마나 이삼평을 존경하는지 알 수 있다. 이어 이듬해인 1917년부터 도조제(陶祖祭)와 함께 도자기 축제를 열고 있다. 또 하나의 추모비로는 한⋅일 양국의 새로운 우호 친선을 바라는 아리타 주민의 모금에 의해서 제작된 도조 이삼평공 헌장비(陶祖李參平公憲章碑)로, 1990년 10월 이삼평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 가운데 많은 수가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하여 이삼평과 같은 도공들은 조선의 높은 자기 문화를 일본에 알려주게 되었으며 일본을 세계 도자 대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조선과 일본 모두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의 경우 문화적으로는 성리학이나 도예 등의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