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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상황을 기록한 책이다.

유성룡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으로 1566년(명종 2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예문관(藝文館) 등을 시작으로 공조좌랑(工曹佐郞)과 이조좌랑(吏曹佐郞) 등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는 왜적이 쳐들어올 것으로 판단하여 권율(權慄, 1537~1599)이순신(李舜臣, 1545∼1598)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 및 성곽 건축을 건의하였으며, 군비 확충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은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징비(懲毖)’ 구절을 따왔다. 책의 구성은 『징비록』 2권, 『근포집(芹曝集)』 2권, 『진사록(辰巳錄)』 9권, 『군문등록(軍門謄錄』 2권 및 『녹후잡기(錄後雜記)』로 되어 있다. 『근포집』은 저자가 올린 차자(箚子) 및 계사(啓辭)를 모은 것이고, 『진사록』은 임진년(壬辰年)이었던 1592년부터 이듬해 계사년(癸巳年)인 1593년까지 종군(從軍)하는 동안의 장계를 수록한 것이다. 그리고 『군문등록』은 1595년(선조 28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저자가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재임할 때의 이문류(移文類)를 모은 것으로 여기에 자서(自序)자발(自跋)이 들어 있다. 『녹후잡록』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저자가 듣고 본 사실들을 수필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징비록』을 저술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유성룡이 조정에서 물러난 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明)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制海權)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유성룡이 전쟁과 관련하여 조선 측의 중심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개전 초에는 영의정이었고 그 이후에는 전시 문정 최고책임자인 도체찰사 자격으로 전쟁 국면의 외교, 휴전 협상, 군수 보급, 훈련 체계 개편을 주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치적 후원자였으며, 군 훈련체계의 혁신을 가져온 훈련도감(訓練都監)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즉 임진왜란의 전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유성룡이 있었던 것이다.

필사본『징비록』은 1647년(인조 25년) 유성룡의 손자가 경상도 감찰사로 재임하고 있던 유성룡의 외손 조수익(趙壽益)에게 요청하여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1695년(숙종 21년) 일본 교토[京都] 야마토야[大和屋]에서도 간행되었는데, 1712년 조정에서는『징비록』의 사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일본으로의 유출을 금지하였다.

이 책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난중일기(亂中日記)』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조정내의 분열, 임금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불신, 무사안일로 일관했던 관료들과 군인들의 모습을 솔직히 묘사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더욱 크다 하겠다.

1969년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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