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
  • 시대별
  • 조선 시대
  • 왜란과 호란의 극복
  • 쇄미록

쇄미록

쇄미록(瑣尾錄)은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겪으면서 쓴 일기로, 1591년(선조 24년) 11월 27일부터 환도한 다음날인 1601년(선조 34년) 2월 27일까지 만 9년 3개월간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쇄미록(瑣尾錄)이라고 제목을 정한 것은『시전(詩傳)』의 모구장(旄丘章)에 ‘무엇보다 누구보다 초라한 것은 여기저기 객지를 떠도는 사람’이라는 뜻의‘쇄혜미혜(瑣兮尾兮) 유리지자(流離之子)’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유리기(流離記), 곧 피난록(避亂錄)을 의미한다. 일기 마지막에 “이후부터의 일기는 용지도 다하고 또 서울에 다시 돌아와 유리할 때도 아니므로 붓을 그친다”고 한 데에서 피난 중의 사실을 기록하려는 데 이 일기의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쇄미록은 총 7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책은 「임진남행일록(壬辰南行日錄)」, 「임진일록(壬辰日錄)」, 제2책은 「계사일록(癸巳日錄)」, 제3책은 「갑오일록(甲午日錄」, 제4책은 「을미일록(乙未日錄)」, 「병신일록(丙申日錄」), 「정유일록(丁酉日錄)」, 제5책은 「정유일록(丁酉日錄)」, 제6책은 「정유일록(丁酉日錄)」, 「무술일록(戊戌日錄)」, 제7책은 「기해일록(己亥日錄)」, 「경자일록(庚子日錄)」, 「신축일록(辛丑日錄)」으로 되어 있다. 각 책의 끝에는 국왕과 세자의 교서, 의병들이 쓴 글, 유명한 장수들의 성명문, 각종 공문서, 과거 시험을 알리는 글, 기타 잡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밖에 임진왜란 시기에 있어서 관군의 무력함에 대한 비판, 명(明)나라가 구원병을 보낸 것과 화의(和議) 진행 및 결렬, 정유재란(丁酉再亂) 등 장기간에 걸쳤던 전쟁에 관하여 전반적이고 광범위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희문은 비록 관직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고을 수령들과의 친분을 통해 각종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장수현에서 보고 들은 각 지역의 전투현황과 각 의병장들의 활약상, 왜군의 잔인한 살인과 약탈행위, 명나라 군대의 무자비한 약탈과 황폐화, 전란에 따른 피난민 사태, 군대 징발, 군량 조달 등 다른 자료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사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오희문의 쇄미록은 임진왜란 당시 민중의 생활상과 지방 행정의 실태가 담겨 있는 사료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경제 및 오희문의 개인 생활 등이 담겨 있어 조선 시대 경제사와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62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해제를 포함하여 ≪한국사료총서 14≫로 간행하였으며, 상⋅하 2책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1991년에는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