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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비

삼전도비(三田渡碑)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淸)에 항복하여 강화협정을 맺은 조선 조정에서 1639년(인조 17년) 청 태종(太宗) 숭덕제(崇德帝 1592~1643, 재위 1626∼1643)의 요구에 따라 세운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1636년(인조 14년) 청 태종은 10만 군사를 직접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는 강화도의 함락 소식과 함께 전쟁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을 비롯한 주화파(主和派)의 주장에 따라 청나라와 화의(和議)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던 한강가의 삼전도(三田渡) 나루터에 수항단(受降壇)을 마련한 후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하는 굴욕을 당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청나라 조정의 요구로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춘 이 비석을 세웠던 것인데, 이 비석은 높이 3.95m, 폭 1.4m에 이르는 큰 규모이며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비문은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이 짓고 글씨는 오준(吳竣, 1587~1666)이 해서(楷書)로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呂爾徵, 1588~1656)이 썼다. 청나라의 조선 출병(出兵) 이유와 조선의 항복, 항복 이후 청 태종 회군(回軍)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내용이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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