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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시행

사진은 1895년(조선 고종 32) 11월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시행한 단발령으로 인해 길거리에서 단발을 당하는 장면이다. 단발령은 성년 남자를 대상으로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에 상투를 자르도록 한 명령이다.

그에 앞서 조선 정부는 1894년 이른바 ‘갑오경장(갑오개혁)’을 단행하여 과거제와 신분제를 철폐하는 등의 봉건적 전통질서를 타파하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것은 동학 농민 운동의 구실로 군대를 출병한 일본이 궁궐을 장악하게 되자, 그를 배경으로 하여 새로 집권한 김홍집 내각이 군국기무처를 신설하여 단행한 개혁으로 제1차 갑오개혁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내정간섭을 강화하기 시작한 1894년 12월부터는 일본에 의해 김홍집박영효의 연립내각이 수립되었는데, 이때 「홍범 14조」를 발표하여 내정 개혁에 착수한 것을 제2차 갑오개혁이라고 한다. 제3차 개혁은 1895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단행된 것으로서 태양력의 채택, 소학교령의 발포 등 총 140여 건의 개혁안이 의결되었다. 그 중 11월에 공포된 단발령은 전통적으로 유교의 효 사상을 최고로 실천하는 조선 사회에서 강력한 거부감을 일으켰고, 전국적으로 유생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예를 들어, 유생 최익현은 “내 머리는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더욱이 삼국 간섭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친러파 인물들로 내각을 구성하며 배일 정책을 추진한 명성황후가 1895년 8월에 시해되는 을미사변도 있었다. 나라의 왕후가 시해되는 사건을 겪은 데다가 친일 내각에서 단발령을 시행하게 되자,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 정부는 의병을 진압하기 위하여 중앙의 친위대를 파견하였는데, 이 틈을 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을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이 일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김홍집 내각은 붕괴되고, 김홍집은 을미사변의 뒤처리와 단발령 시행에 불만이 많던 민중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단발령 문제는 새로 등장한 친러파 내각이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단발을 각 개인의 자유 의사에 맡김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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