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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조사 사업

사진은 1910년 일제에 의한 조선병탄 이후 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조사하는 토지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토지를 측량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다.

조선 총독부의 토지 조사 사업은 식민지 경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1912년 토지 조사령이 공포된 후 가속화 되어 1918년까지 이루어졌다. 토지 조사령 제4조를 보면, ‘토지 소유자는 조선 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소⋅씨명, 명칭 및 소유지의 소재, …… 등을 임시 토지 조사 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여, 토지 소유권자가 직접 신고하여 소유지를 인정받는 신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적인 소유권을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토지의 소유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구별하지 못했으며, 당시의 농민들은 대부분 신고주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신고 기간 또한 짧았을 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감정도 섞여 신고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렇게 신고되지 않은 토지와 공공 기관의 토지, 마을의 공유지, 황무지나 미개간지 등의 수많은 토지가 국유지로 처리되어 조선 총독부 소유가 되었다. 그 결과 1930년의 통계에 의하면 조선 총독부가 소유한 전답과 임야의 면적이 전 국토의 40%에 해당하는 888만 정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토지 조사가 이루어지자 총독부는 지세 부과 대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식민지 통치를 위한 재정 수입을 강화할 수 있었다. 과세지는 10년 사이에 52%나 늘어났으며, 총독부의 지세 수입도 2배로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조선 총독부는 이렇게 획득한 토지를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비롯한 식민 회사나 일본인 지주에게 헐값으로 넘겨 주었다. 이 과정에서 관습적으로 인정받던 농민들의 경작권은 부정되고 지주의 소유권만을 인정하게 되어, 조선인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만주, 연해주 등지로 이주하게 되는 민족적인 비극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조선 총독부의 토지 조사 사업은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의 확립이라는 일제의 선전과는 달리, 침략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자본의 축적과 쌀을 비롯한 각종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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