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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개척 토목 공사장의 한국인 노동자들

사진은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홋카이도 개척 토목 공사장에 끌려가 학대당한 한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일제는 1930년대에 들어와 세계 경제 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한반도를 병참 기지로 이용하려는 정책을 펴나갔다. 그리고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에 나서면서 국가 총동원법(1938)을 제정하여 전시 동원 체제를 확립하고, 한국에도 이를 적용하여 식민지 통치의 방향을 침략 전쟁의 지원에 두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지원병제⋅징병제를 실시하여 우리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그리고 군수 산업에 종사할 노동자를 확보하려고 징용제를 실시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 아시아 등지에 강제로 끌고 갔다. 그리하여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군수 사업장에서 혹사당한 끝에 목숨을 잃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희생되었다.

사진에서 나와 있는 홋카이도 개척공사에도 많은 한국인이 끌려 갔었다. 1933년 9월부터 징용이 시작되어 1942년에는 14만 5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은 당시 130여 지역에서 탄광, 공황, 도로, 댐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고 확인된 사망자 수만 2,015명이나 된다.

일제는 여성도 근로 보국대, 여자 근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고 가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더욱이 많은 여성들을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시아 각 지역으로 보내 위안부로 희생시키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1939년에서 광복 때까지 강제로 끌려간 사람은 적어도 650만 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국외로 끌려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우리 민족이 국내에서 일제의 소위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 강제로 혹사당했기 때문에 결국 우리 민족 전체가 일제의 침략 전쟁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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