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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비상사태 선언

사진은 ‘국가 비상사태 선언’을 알리는 1971년 12월 6일자 신문 기사이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은 “현재 대한민국은 안전 보장상 중대한 차원의 시점에 처해있고, 이에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한다고 발표하였다.

5⋅16 군사 정변을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민간에게 권력 이양을 약속하였지만, 이를 어기고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여 1963년과 1967년에 재차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자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을 내세우며 3선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사회적 반대 여론이 고조되어 3선 개헌 반대 투쟁이 전개되었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공화당을 비롯한 개헌안 지지 세력은 별관에서 개헌안을 변칙적으로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박정희는 재 출마할 법적 권한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민심이 이반되어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야당인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 김대중(金大中, 1924~2009)을 53.2% 대 45.2%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그 뒤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야당인 신민당이 과반수에 가까운 의석을 획득하였다.

박정희는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정권 유지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어 반공체제의 변동이 초래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1971년 사법부 파동, 광주 대단지 사건, 실미도 사건 등이 연달아 발생하였다. 전태일의 분신과 학생들의 교련 반대 시위가 전개되는 등 사회 발전과 함께 시민들의 권리 의식도 성장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권위주의를 더욱 강화하여 이러한 사회 변화를 통제하고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국가안보 위기를 내세워 1971년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였으며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통과시켰다.

1971년 12월 6일의 ‘국가 비상사태 선언’은 대통령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1972년 10월 유신헌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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