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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

당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은 당나라 장회태자 이현(章懷太子 李賢, 651~684)의 묘실 벽화 중 신라 사신으로 생각되는 인물을 말한다.

당 장회태자묘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건현(乾縣)에 있는 당나라 때의 벽화묘이며, 건릉(乾陵)배총(陪冢) 중 하나이다. 묘주인 이현은 고종과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로서 16세에 황태자가 되었고, 학문을 즐겨 『후한서주(後漢書注)』를 지었다. 그러나 무후의 미움을 받아 서인(庶人)으로 폐출되어 쓰촨성[四川省] 바저우[巴州]에서 31세로 자살하였다. 사후에 옹왕(雍王)으로 추봉되었으며, 무후가 죽은 뒤인 706년에 장회태자로 추증되고 건릉에 배장되었는데, 뒤에 부인 방씨(房氏)도 합장되었다.

장회태자 묘에는 한 변 43m, 높이 18m의 방태형분구(方台形墳丘)가 있고, 전방에 토궐(土闕)⋅석양(石羊)이 남아 있다. 내부는 4개의 천정이 있는 묘도 안쪽에 벽돌로 쌓은 용도와 전후 두개의 묘실이 있다. 묘도와 묘실에는 총 50여 폭의 벽화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마구(馬球) 경기, 출행(出行), 객사(客使), 의장대(儀仗隊), 남녀시종의 그림과 같이 귀족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그림부터 청룡⋅백호⋅일월성신 등 신앙적인 주제까지 다양하여 미술사에서 가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벽화는 채색화가 많으며 우선 회벽에 밑그림을 그린 후에 연한 먹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착색 후 먹으로 다시 윤곽선을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 외의 유물로 묘지(墓誌) 2건이 발견되었는데 「옹왕묘지(雍王墓誌)」와 「장회태자묘지(章懷太子墓誌)」이며, 천정 좌우의 작은 감(龕)에서 3,600여 점의 삼채용(三彩俑)⋅도자기류가 발견되었다.

50여 폭의 벽화 중 묘도 동벽의 예빈도(禮賓圖)에서 주목할 대상은 다섯 번째 인물로, 2개의 깃털을 단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헐렁한 도포와 바지를 착용하고 있다. 조우관은 삼국이 공통으로 착용하였던 관모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사신의 국적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는 이현이 태자로 책봉되기 훨씬 전에 멸망했으며, 측천무후 통치기에 외교 관계를 유지한 한반도의 국가는 신라였기 때문에 그림의 주인공을 신라 사신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반면 고구려 사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는 신라가 649년에 당나라 식으로 관복을 개정한 점, 당나라가 실제 강성했던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국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곧바로 보장왕(寶藏王, 재위 642~668)을 죽이지 않고 677년 그를 요동도독조선군왕(遼東都督朝鮮郡王)에 봉하였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곧 예빈도의 벽화는 당시 당나라 중심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고구려인의 모습으로 한반도인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장회태자묘 벽화의 사신도는 양직공도(梁職貢圖)의 백제사신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궁전 벽화 속 사절도 등과 더불어 고대 한국인의 복식과 국제 교류의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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