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1910년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에서 한국 황제·태황제·황태자 및 그 태비(后妃)와 후예, 기타 황족과 그 후예, 훈공이 있는 한국인을 우대하고 그 지위 보장을 약속하였다. 이에 따라 순종은 창덕궁 이왕(李王), 고종은 덕수궁 이태왕(李太王), 황태자 이은은 왕세자로, 왕의 근친인 이강(李堈)과 이희(李熹)는 각각 공(公)으로 책립하고, 이들 왕·공족(王公族)은 대대로 일본 황족과 같은 예우와 은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일제가 이처럼 조선 황실을 예우하는 모습을 취한 것은 한국인들의 저항을 방지하고, 황실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화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1920년에는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일본 황실의 이방자와의 정략 결혼이 단행되었다. 이은은 조선의 왕세자이면서도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군인으로 키워졌다. 그가 조선에 가끔 건너올 때마다 일제는 성대한 환영 행사를 준비하여 한국인들에게 양국의 친선을 목격하게 하였다. 또 1927년 제네바에서 국제 연맹 회의가 열리자 이은 부부의 유럽 순방을 추진함으로써 해외에도 일제의 지배가 성공적임을 선전하였다. 일제는 대한 제국 황실을 우대하면서도 실권은 부여하지 않는, 내선 융화의 상징으로만 활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