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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서원 건축을 보면 옛날 학교생활이 보인다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 건축물, 서원인데요. 조선시대 각 지방의 학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사립학교입니다. 서원은 존경하는 스승의 학문과 사상을 기리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서원 곳곳에선 당시 유학자들의 학교생활과 마음에 새겨야할 가르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볼까요?

낮은 지붕이 맞이하는 서원의 입구.
서원에 들어서는 이는 누구나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발걸음도 조심했습니다.
서원 건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원의 생활규칙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유학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임을 나타냅니다.

수업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유생들이 공부하는 교재는 소학과 사서삼경이 주를 이뤘는데요. 혼자서 유학 관련 서적을 공부하는 개별학습과 스승과 함께 하는 공동학습이 병행됐습니다.

강당에선 먼저 유생이 평소 외우고 공부한 것을 소리 높여 설명하고 다른 유생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그 다음 스승이 평을 하는 방식이었는데요. 내용을 외우지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면 낙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도 유생들을 평가하는 성적표가 있었는데요. 서원마다 표시하는 방법이 각각 달랐습니다. 소수서원의 성적표를 보면 통과를 뜻하는 ‘순’ 낙제인 ‘불’로 표시돼 있습니다.

‘팔불출’이란 말이 있는데 서원에서 ‘불’ 성적을 8개나 받을 정도면 퇴학이나 다름없는 성적입니다. 그래서 팔불출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서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제사인데요. 사당에 모신 선현의 가르침을 본받고 지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지내며 지역이나 학파에 따라 제사의 형식과 모습은 차이를 보입니다.

서원의 제사상엔 밥과 국, 수저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대신, 생고기와 생쌀 같이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가 올라갑니다.

서원에는 지금의 교칙과 같은 내부규칙이 있었는데요.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내용을 비롯해 유생들이 존경과 예를 다해 생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서원에 심어진 나무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해서 향교나 서원에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배롱나무인데요. 나무껍질 없이 매끈한 몸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청렴결백한 선비를 상징합니다.

자연과 벗하며 학문을 깨우치다

서원이 자리 잡은 곳은 두 가지의 요건을 갖췄습니다. 스승이 학문을 펼친 곳이나 스승의 고향 같은 연고지를 선택했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산수가 뛰어나고 조용한 곳에 위치했습니다.

자연과 함께 학문을 깨우치는 서원의 특징은 입구에 위치한 ‘누’라는 건축물에서 드러나는데요. 유학자들이 모임을 갖거나 시를 읊고 경치를 감상하며 쉬던 곳입니다.

서원은 지방에서 학문을 닦던 문인이자 학자인 사림이 설립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기리는 목적과 유학자를 키워내는 목적이 중요했습니다. 서원 건축은 이를 따라 교육 공간인 강당, 동재, 서재 제향 공간인 사당으로 배치합니다.

대부분의 서원은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배치와 건물 구조를 보이며 일관된 건축 형식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육공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은 강당인데요. 대청마루에서 스승과 유생들이 모여 수업을 했습니다. 여기에 앉아 정면을 보면 서원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잠을 자고 공부하던 공간입니다. 서원의 건물을 보면 크거나 화려하지 않고 절제되고 단아한 멋이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당은 문과 담을 쌓아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했는데 신성한 곳이란 뜻입니다. 출입문 중 가운데 문은 혼령과 제사에 쓰이는 물건들이, 사람들은 보통 동쪽문으로 들어가 서쪽문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이용했습니다. 장판각도 서원의 중요한 건축물인데요. 책을 만들고 책판을 보존하던 곳입니다. 이로써 지역 사회에서 지식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서원은 각 건물의 이름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보통 옛 문헌에서 글귀를 따서 지었는데요. 유생들을 위한 가르침과 배움의 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 서원이 생기면서 국가는 서원에 현판과 땅, 노비 등을 내렸는데요. 이것이 바로 사액서원입니다.

서원이 인정받으며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자 많은 유생들이 서원을 찾게 되는데요.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을 거쳐 간 인원만 해도 4000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원은 시간이 흐르며 본연의 기능보다는 학파나 당파의 중심이 되면서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조선 후기 수 백여 개에 이르렀던 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우를 포함해 47개만이 남게 됐습니다.

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배출하던 교육기관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건축물에 뜻깊은 의미를 담고, 생활 속에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선조들의 노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조선시대서원은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2. 조선시대 최초의 서원은 소수서원이다.
3. 사액서원은 국왕으로부터 편액, 노비, 서적 등을 받았다.

해설

서원은 유학 교육기관의 하나이다. 교육은 유학의 사회적 보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 경우 관립의 성균관과 향교, 사립의 서원이 고등교육기관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에서 서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당나라 시기의 일이었으며 남송대에 관학의 쇠퇴와 과거제도의 부패 등을 비판하며 독자적인 성격을 만들어갔다. 주자의 백록동서원은 이 시기의 대표적 서원으로 중국 서원제도의 실질적 기반을 형성하였으며,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사회에서 서원은 16세기 중반에 등장하였다. 한국에 있어서 서원의 등장은 16세기 중반 풍기군수 주세붕에 건립한 백운동서원이다. 백운동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우를 세우고 재실을 만들어 선비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준 것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1550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해오면서 정부로부터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이름으로 편액을 하사받았다. 이때의 사액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이후 서원들은 사액을 받아 공식적인 학교시설로 자리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서원의 격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황의 서원 보급 운동 등을 거치면서 서원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사림의 장수(藏修), 강학(講學)의 장소로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서원은 사림 세력의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7세기 중반까지(1543-1650) 약 1세기 동안 약 140여 개소의 서원이 건립되었고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은 곳이 36개소였다. 이 시기의 서원은 제향, 강학, 회합 기능의 본격적인 가동을 통해 사림 양성과 실천기구로서의 성격을 확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때의 서원은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나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별, 학파별 견해를 조율하고 수렴하며, 이를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 정치적 활동도 수행하였다. 이 점은 한국 서원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점차 서원은 사회운동으로서의 이상보다는 문파와 문중의 창양을 위해, 혹은 정치적인 입지의 강화와 지역에 대한 전략적 교두보 마련을 위해 건립되는 부작용 또한 강해지면서 순기능이 점차 약화되어 갔다. 흔히 당쟁의 폐해로 지적되는 모습들은 이 시기에 격화되었다. 조선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서원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 남설을 금지하는 등의 시책을 펼친 바 있고, 종국적으로 고종대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사우를 포함 전국 47개의 시설만을 남기고 대부분 서원과 사우가 철폐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수많은 서원 중에서 일부만이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갖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들어 근대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가 등장하면서 서원은 그 역사적 역할을 마감하였다.

서원은 그 교육의 방법으로 성리학 문헌에 대한 강학, 선배 사림에 대한 제향 등을 병행하였다. 따라서 서원에는 제향과 강학이라는 두 개의 영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서원은 사림 집단의 회합 공간으로도 활용된바, 회합의 공간도 마련되었다. 서원은 향교와 달리 공자가 아닌 그들의 선배 사림을 제향하였고 과거 시험 준비보다는 성리학의 사회적 실천에 주목하였다. 또한 입지에 있어서 제향자의 연고지의 경관이 수려한 곳을 택한 점, 회합 공간을 발달시킨 점 등도 중요한 차이이다.

즉, 서원의 기능은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스승에 대한 제향, 후속세대에 대한 강학, 유학자들 사이의 회합이 그것이다. 서원은 선배 사림의 학덕과 실천을 후학의 롤모델로 삼기 위해 제향 기능을 갖는다. 이 점은 중국의 서원이나 조선의 향교 등과 차별되는 조선 서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현재 서원의 강학 기능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제향 의식은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다. 스승에 대한 제향을 통해 학문적 모델을 설정함과 함께, 후속세대에 대한 교육은 강학을 통해 이루어졌다. 강당에서의 학문적 토론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다. 지역 유학자들 사이의 회합과 향약을 통한 사회교화 또한 서원의 주요 역할이다. 유학자들은 정치적 논점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공동의 의견으로 중앙 정부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목소리를 내었다. 즉 서원은 성리학 사회운동의 거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에 적합하게 서원은 제향영역, 강학영역, 회합영역 등으로 구성되었다. 제향영역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제향 의식을 보조하는 전사청 등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고, 강학영역에서는 강당과 동서재가 중심이 되었다. 장판각 등 보조 시설이 포함되기도 한다. 회합영역에서는 누마루를 중심으로 외부 경관과의 밀접한 관련을 추구하였다. 이들 세 영역은 보통 가장 안쪽으로부터 제향, 강학, 회합 순으로 배치되었다. 경사지인 경우에는 적절한 높고 낮은 차이를 이용하여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하였고, 특히 바깥으로의 조망을 중시하여 입지, 배치를 선택하였다. 주변의 산, 강, 개울, 들판을 조망하며 자연과 합일되는 건축적 추구는 성리학의 전인적 교육의 이상과 닿아 있는 특징이다. 평지의 경우에는 자칫 뒤쪽으로 숨어 잘 드러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제향영역의 배치에 고심하였다. 축을 달리하거나 동서재와 강당의 위치를 바꾸는 등은 이를 위한 수법들이었다.

서원 건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이들이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된 학교이면서도 그들 사이에 강력한 유형적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은 제향과 강학의 기본적인 기능 공간은 갖추었지만 정형화된 배치법을 완성한 단계는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설립된 남계서원에서 제향, 강학 공간을 세로축을 따라 배치하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조선 서원 배치의 기본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남계서원에서는 애련헌과 영매헌 등 작은 규모의 유식기능만을 두었지만, 옥산서원은 이를 크게 확대하여 무변루라는 누각을 서원의 전면에 설치하였다. 대규모의 누각을 배치함으로써 서원은 외부의 경관과 적극적인 관련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이 공간을 성리학자들의 회합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도산서원에서 사당과 강당의 축을 병렬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시도하였고, 도동서원에서는 급경사지의 경관 조절을 탁월한 방식으로 완성하였다. 호남 지역으로 확대된 서원은 평지에 자리 잡은 필암서원에서 배치법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강당과 동서재의 위치를 역전시킴으로써 사당의 영역을 개방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중요한 성취이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탁월한 경관 구성, 돈암서원 응도당의 예학적 완성은 서원의 건축이 더욱 심화되고 발전되는 양상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후의 서원들은 이상에서 시도된 배치의 전형을 따르며 각각의 여건에 맞는 적응적 변용을 탐색하였다. 말하자면 서원 건축의 정형성은 초기 10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집단으로 모색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조선의 서원이 중국이나 일본의 유사 건축과 다른 독특한 특징으로 이해된다. 전형성, 경관활용, 누각 등은 한국 서원의 독자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요소들이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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