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검색팝업 닫기
목록보기
시나리오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우리 종이, 한지
한 겹 한 겹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한지는 장인의 손길을 거치며 명품이 됩니다.

“ 닥나무는 물에는 약하지만 물에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의 강도는 천, 면보다는 강하거든요. ”

안치용 한지장 /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우리 선조들은 학문을 중요하게 여기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종이와 인쇄문화를 발전시켰는데요.
그 놀라운 성과를 만나볼까요?

인류문명을 바꾼 발명품, 제지술

인류는 문자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재료에 기록을 했는데요. 종이가 발명되면서 인쇄술이 본격화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종이, 한지
주재료인 닥나무 껍질을 잿물에 삶은 다음 곱게 펴서 말리면 한지가 완성됩니다. 닥나무 채취에서 한지가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100번의 손길이 간다고 해서 한지를 백지라고도 부릅니다.
고유의 제작방식으로 탄생하는 한지는 질기고 잘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 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고 보존성이 우수한데요. 1200년이 훌쩍 넘은 통일신라시대 불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한지는 매끄럽고 부드러워 붓글씨를 쓸 때 먹물이 고르게 번지는 게 특징입니다.

송나라의 조희곡(趙希鵠)이 지은 『동천청록(洞天淸錄)』을 보니, 고려 종이는 면견(綿繭)으로 만들었는데, 빛은 비단처럼 희고 질기기가 명주와 같아서 먹을 잘 받으니 사랑할 만하며, 이는 중국에 없는 것이니 역시 진기한 명품이다.

- 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중국에서도 한지는 인기 있는 종이였는데요. 고려 종이를 비단처럼 희고 명주처럼 질기다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대대로 한지는 명품 종이로 인정받으며 그 전통을 계승해오고 있습니다.

시대를 넘어 사랑받은 목판인쇄술

종이에 이어 인쇄술이 발명되며 인류는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는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먼저 등장한 건 목판인쇄술입니다.

목판인쇄술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긴 다음 먹을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것인데요. 여러 번 인쇄할 수 있고 세밀한 그림이나 지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목판인쇄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우리나라가 앞서가는 인쇄문화를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고려시대에 만든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목판인쇄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8만 천여 장의 경판에 불교 경전을 새겨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부릅니다. 1011년 무렵 거란의 침략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게 됩니다. 중앙정부의 권위를 확립하고, 민심을 수습하며, 불교의 힘으로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보자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초조대장경만을 복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조대장경을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만든 대장경을 모두 모아 당시로서는 가장 많은 경전들을 수록했습니다. 또 여러 대장경을 비교, 대조하며 오류를 바로잡아 현존하는 대장경 중에서 내용이 가장 완벽합니다.

팔만대장경에는 무려 5200여 만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글씨체가 일정합니다. 조각 솜씨도 뛰어나며 잘못되거나 빠트린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높은 완성도를 가진 문화유산인 것입니다.

역사적, 문명적 가치를 인정받은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조선, 금속활자 전성시대

목판인쇄에 이어 등장한 것은 활자 인쇄입니다. 나무나 금속으로 하나씩 글자를 따로 만든 것을 내용에 맞게 배열한 다음 종이에 찍어내는 방법입니다. 한 번 만들어 두면 필요할 때마다 조립해서 책을 만들 수 있어 목판보다 인쇄하기 쉽고 편리했습니다.

중국에서 발명된 활자 인쇄술은 고려시대에 금속활자 인쇄술로 발전합니다. 1377년 인쇄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간략하게 ‘직지심체요절’이라 불리는 불교서적은 현재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입니다. 고려의 활자 인쇄술을 이어받은 조선은 활자를 활발하게 제작했습니다.

금속활자는 오늘날 파악된 것만으로도 30여회 제작됐으며 만든 글자 수를 모두 합하면 수백만자가 됩니다. 목활자는 민간에서도 많이 만들어 그 횟수가 훨씬 많습니다.

조선의 국왕들은 특히 금속활자 제작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나라의 정치를 하는 데는
반드시 전적(典籍)을 널리 읽혀야 할 것이다. ...
내가 구리쇠를 부어서 활자를 만들어 놓고
책을 얻는 대로 인쇄하고자 한다.

- 권근(權近)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태종은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 계미자를 제작하면서 정치를 하는 데 전적, 곧 책의 중요성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구리를 바치게 하고 왕실 재정을 쏟아 부어 계미자를 만들었습니다.

선대왕의 뜻을 이어받은 세종은 재위 기간에 여러 종류의 금속활자를 제작했습니다.

그중 세종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금속활자는 1434년에 등장한 갑인자입니다. 갑인자는 20만여 자를 제작했는데, 모양이 반듯해 앞서 만든 금속활자들에 비해 인쇄 속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글자 모양도 아름다워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글자체로 사용됐습니다.

정조는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많은 금속활자를 제작했습니다. 특히 1795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생부인 사도세자의 묘소에 행차할 때의 기록을 금속활자인 정리자로 찍어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전에 의궤를 손으로 써서 만든 것과 달리 활자로 인쇄해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역시 상당량을 금속활자로 간행했습니다. 특히 현종실록을 만들 때는 실록을 찍기 위한 금속활자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불교 경전이나 통치에 필요한 유교 경전 등을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을 간행하기 위해 한글 활자도 만들었습니다.

특히 구텐베르크가 만든 활자는 남아 있지 않는데요. 거의 같은 시대에 만든 한글 활자가 남아 있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제지술과 인쇄술이 발전하고 책을 중시한 덕분에 우수한 기록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전통종이 한지는 닥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2.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을 막고 민심을 모으기 위해 제작됐다.
3. 태종 때 만든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는 계미자이다.

해설

인쇄술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인류의 지적 진보를 이끈 원동력이다. 하지만 종이가 없었다면 인쇄술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지술과 인쇄술은 불가분의 관계로 제지술이 인쇄술의 향상에 기여하였고,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종이의 수요가 증가하고 제지술도 발전하였다.

Ⅰ. 제지술

1. 종이 이전의 기록용 자료
종이 이전에 기록용 자료는 지역의 자연 및 문자 환경에 따라 다양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진흙 판에 나무나 상아, 금속 등으로 문자를 새긴 다음 햇빛에 말리거나 불에 구워 벽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문자 기록에 제일 처음 사용한 재료는 소의 견갑골이나 거북이의 배 껍질과 등껍질로 만든 갑골(甲骨)이다. 돌과 금속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이른 시기부터 기록용 자료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종이 발명 이전에 대나무와 목재로 만든 죽간(竹簡)과 목독(木牘)을 주로 사용했으며, 비단도 사용하였다. 서양에서는 파피루스와 종이를 주로 사용하였다.

2. 종이의 등장과 종이의 장점
종이의 원료인 셀룰로오스는 물속에서 특별한 접착제 없이 수소와 결합하여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져서 응결된다. 이것을 발과 같은 물체에 건져 말리면 종이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종이는 중국 후한(後漢. 25~250) 시대에 채륜(蔡倫)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전부터 종이를 사용했던 것이 유물을 통해 확인되었다. 채륜이 나무껍질과 마 조각 등 새롭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하고 앞 사람들의 경험을 잘 정리하여 종이를 대량으로 제작하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보고 있다. 종이는 그 이전의 기록용 자료보다 원료를 구하기도 쉽고 가볍고 질기며, 다른 재료들에 비해 값이 쌌다.

서양에서 오랫동안 쓰인 기록용 자료인 파피루스는 글자를 쓰는 동안 구멍이 뚫릴 위험이 있었으며 습기와 물에 약했으며, 마르고 나면 부서지기 쉬웠다. 양피지는 질기고 튼튼하여 오래 보존하기 좋지만 제작에 비용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었다. 종이는 인쇄술과 만나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3. 종이의 원료와 제작 방식
종이의 원료가 되는 식물 섬유는 다양하며, 셀룰로오스가 종이의 강도, 부드러운 정도, 질감, 자연적 색상, 흡수성 등을 결정한다. 1840년대 독일에서 개발한 목재 펄프가 식물 섬유를 대체함에 따라 종이의 원가가 저렴해졌고 종이 생산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종이의 원료와 구체적인 제작 방식이나 첨가물 등은 나라와 시대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종이의 형태와 성질에도 차이가 있지만 종이 제작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는 한지(韓紙)라고 하는데 개항 이후 서양에서 도입된 서양종이, 즉 양지(洋紙)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한지는 중국의 화지(華紙)와 일본의 왜지(倭紙)와도 대비된다. 한‧중‧일의 전통 종이 원료와 제조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지만 주원료의 구성, 종이를 뜨는 방법, 건조 마무리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한지의 원료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섬유가 두껍고 질긴 닥나무 껍질을 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산 닥나무는 인피가 두껍고 태국이나 중국, 일본 아열대 지방보다 섬유가 질기고 길어 두텁고 질긴 종이를 만들 수 있다.

Ⅱ. 인쇄술

1. 인쇄술 이전의 정보 생산 방법
인쇄술은 나무나 금속 등을 이용하여 좌우가 뒤집어진 문자나 도상을 만든 다음 표면에 먹 등을 묻혀 종이 등을 올리고 압력을 주어 원래의 문자나 도상을 찍어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손으로 쓰는 등의 복제 방식보다 지식과 정보의 확산 속도를 높여, 인류의 지적 진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인쇄술의 선구로는 압인법(押印法), 탁인법(拓印法), 날염법(捺染法) 등을 들 수 있다. 압인법은 도장을 찍는 방식이다. 인쇄(印刷)라는 단어는 중국 청나라 말 민국 초기 서양의 인쇄술이 전해지면서 사용된 용어이다. ‘printing’이라는 용어를 ‘印刷’로 번역한 것은 도장의 ‘印’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탁인법은 탁본(拓本)을 뜨는 방식으로 얇은 종이가 만들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종이 발명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원리에서 목판 인쇄와 매우 유사하지만 조각한 재료와 방식 및 복제하는 방법이 다르다. 날염법(捺染法)은 나무나 금속판 등에 그림이나 무늬를 새겨 넣고 염색 재료를 묻힌 다음 천에 찍어서 색깔 있는 형상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이다.
인쇄술은 종이가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지만, 사회적, 문화적 환경도 인쇄술 발전에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특히 인쇄술의 탄생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도에게 종교 경전을 전파하려는 종교적인 열정이 경전의 복제 수요를 불러왔다.

2. 한국의 인쇄술
한국은 통일신라시대에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간행(751년경)하고 고려 시대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를 간행(1377년)하였다. 고려 시대에 간행한 팔만대장경은 오류가 가장 적고 판각 기술도 정교하여 동시기 대장경 중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 시대에는 문치주의를 이루고자 국가 주도로 수십 차례 활자를 제작하고 서적을 간행하였다. 조선의 국왕들은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간행하는데 주력했지만, 발행 부수가 많거나 판화 등이 들어가는 책들은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앙이나 지방 관서뿐 아니라, 사찰, 민간, 서원 등 여러 곳에서 목판본을 많이 간행하였다. 목판은 한번 만들어두면 계속 보관해두고 책을 인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보관의 어려움이 있고, 한 종류의 책만 찍어야 했기 때문에 발행 부수가 많지 않을 때는 경제적이지 않다. 반면에 활자는 한 번 만들어 두면 필요할 때마다 조립해서 원하는 책을 신속하게 간행하는 데 목판보다 한결 수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로 금속활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소량의 부수를 다종으로 인쇄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금속활자를 많이 만들었다.
근대식 납활자에 의한 활판 인쇄술은 1883년 박문국에서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를 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납활자와 근대식 활판 인쇄술은 그 편리성과 효용성이 알려지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납활자를 이용한 인쇄 방식은 종래의 수공업적인 수동식 인쇄 기구에 의한 것과는 달리 기계화가 된 것이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도록

  • 국립민속박물관, 2004, 『천문-하늘의 이치 땅의 이상』
  • 국립민속박물관, 1995, 『한국의 종이 문화』
  • 국립중앙박물관, 2006, 『한글 금속활자』
  • 국립중앙박물관, 2007, 『조선의 금속활자-교서관인서체자』
  • 국립중앙박물관, 2008, 『금속활자에 담은 빛나는 한글』
  • 국립중앙박물관, 2011, 『문자, 그 이후』
  • 국립중앙박물관, 2016, 『활자의 나라 조선』
  • 국립진주박물관, 2004, 『목활자로 보는 옛 인쇄문화』
  • 국립한글박물관, 2016, 『근대 연활자 한글자료 100선』
  • 청주고인쇄박물관, 2002, 『한국 고활자 특별전』
  • 한국국학진흥원, 2014, 『유교책판』
  • 浙江人民美術出版社, 2000, 『印刷之光』

단행본

  • 강명관, 2014,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 상상
  • 국립중앙박물관, 2009, 『불국사석가탑유물-경전』, 국립중앙박물관
  • 김두종, 1974, 『한국고인쇄기술사』, 탐구당
  • 김삼기·정선화 공저, 2006, 『한지장』, 민속원(국립문화재연구소)
  • 부길만, 2008, 『책의 역사』, 일진사
  • 손보기, 2000, 『금속활자와 인쇄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윤병태, 1992, 『조선후기의 활자와 책』, 범우사
  • 이노우에 스스무(이동철 등 역), 2013, 『중국 출판문화사』, 민음사
  • 이승철, 2002,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한지』, 현암사
  • 이재정, 2008, 『조선출판주식회사』, 안티쿠스
  • 천혜봉, 1990, 『한국전적인쇄사』, 범우사
  • 천혜봉, 1997, 『한국서지학』, 민음사
  • 천혜봉, 2012, 『한국금속활자인쇄사』, 범우사
  • 錢存訓(김의정, 김현용 옮김), 2013, 『중국의 종이와 인쇄의 문화사』, 연세대학교대학출판문화원
  • T.F. 카터(강순애, 송일기 공역), 1995, 『인쇄문화사』, 아세아문화사

논문

  • 김삼기, 2002, 「조선전기 종이 공납제 연구」, 『역사민속학』 15
  • 박상진, 2003, 「목판 및 종이(韓紙)의 재질 분석」, 『국학연구』 2
  • 설석규, 2005, 「조선시대 유교목판 제작 배경과 그 의미」, 『국학연구』 6
  • 손계영, 2017, 「17세기 사대부가의 종이 사용과 공급」, 『장서각』 38
  • 옥영정, 2009, 「조선시대 인쇄관청의 활자인쇄 장인 연구-균자장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47
  • 옥영정, 2015, 「16세기 후반~17세기 조선의 목활자인쇄와 출판문화적 의미」, 『한국문화』 72
  • 이재정, 200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에 대한 일고찰」, 『서지학연구』 29
  • 이재정, 2010, 「정조의 생생자‧정리자 제작과 중국활자 구입」, 『한국사연구』 151
  • 이재정, 2011, 「조선 후기 중국 활자 제작 방식의 도입과 활자의 구입」, 『규장각』 38
  • 이재정, 201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록자 고찰」, 『규장각』 40
  • 이재정, 2013, 「낙동계자를 통해 본 조선시대 문인들의 지적 교류」, 『민족문화연구』 60
  • 이정신, 1998, 「고려시대 종이의 생산 실태와 紙所」, 『한국사학보』 5
  • 정선영, 2008, 「白綿紙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 41
  • 정선영, 2011, 「조지서의 관제와 관리」, 『서지학연구』 50

제지술과 인쇄술
자료정보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