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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절풍년을 기원하며 한 해의 벼농사가 시작됐습니다. 벌써 갈아 둔 논에는 모심기가 한창입니다.

“80년대부터는 이앙기가 보급됐지만 본격적으로는 90년대 들어서 쓰기 시작했죠. 엄청난 효과죠 이 면적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기계가 아니면 못하는 현실입니다.”

최국영 반장 / 현대서산농장

논밭 갈이에서부터 수확까지!
요즘은 다양한 농기계들이 농부의 일손을 덜어줍니다.
하지만 먼 옛날 선조들에게 농사는 손수 하나하나 일궈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는데요, 농부의 일손을 도왔던 것은 바로 전통 농기구들입니다.
절기마다 다양하게, 지역마다 조금씩 달리 사용한 전통 농기구들!
우리의 농기구에 대해 알아봅니다.

농사의 최고 일꾼, 농기구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농사를 생업으로 여기며 대부분의 백성이 농사에 일생을 바쳐왔습니다.

음력 3, 4월이면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5월에는 모를 심고 여름내 정성으로 돌보며 가을이면 수확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절기에 따라 활약하는 농기구도 달랐습니다.

봄이면 땅을 갈고 고르는 갈이용 농기구가 주인공이 되었는데요, 쟁기, 따비, 쇠스랑, 써레 등이 대표적이죠.

여름철에는 작물 옆에 같이 올라 온 잡초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호미가 활약을 했습니다. 풀을 베거나 수확을 할 때는 낫이 한 몫 했습니다. 도리깨는 크게 휘둘러 알곡을 떨어낼 때 씁니다.

쟁기의 역할은 크고 중요했습니다. 쟁기는 논밭의 흙을 갈아엎을 때 사용합니다. 쟁기 끝에 달린 보습이 흙을 파서 떠올리면서 땅을 가는 것이죠.

“강원도는 산간지역이 많아서 경사진 밭이 많습니다. 화전을 개간하기 때문에 땅이 척박하고 돌이 많습니다. 소 한 마리로 갈면 힘들어서 안 됩니다. 그래서 두 마리로 갈고 있습니다.”

조성근 회장 / 홍천겨릿소 밭갈이소리 전승보존회

선조들은 농사에 있어 쟁기질을 아주 중하게 여겼는데요, 그래서 머슴은 쟁기질 실력에 따라 새경도 다르게 매겼다고 합니다.

“쟁기질을 잘하면 마을사람들이 그 사람한테 서로 딸을 주려고 경쟁이 붙을 정도로, 쟁기질꾼의 중요성이 대단했죠.”

조성근 회장 / 홍천겨릿소 밭갈이소리 전승보존회

지게 역시 유용한 농기구 중 하나였습니다.

“차 대신 지게야 지게. 시방은 차잖아. 차로 막 실어 나르는데 옛날에는 지게 아니면 일을 하지 못하지.”

염문섭 / 강원도 양구지게마을

지게에서는 작대기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건을 실을 때는 삼각형 구조를 이루게 해 무게 중심 역할을 하고 짐을 지고 일어설 때 다리에 미치는 하중이 줄게 하여 한결 가볍게 일어나도록 도와줍니다.

낫을 한번 볼까요?
풀을 베거나 가지를 치는 등 자르는 농기구가 낫인데요, 지역에 따라 손잡이의 길이와 날 모양이 다르다고 합니다.

“강원도는 목이 길어요. 절삭력이 더 높아지죠. 나무를 많이 쳐야 되니까 그런데 평지로 내려오면서 목이 짧아져요. 그리고 직각으로 더 꺾어집니다. 나무보다 풀이 많으니까.”

이광원 / 대장장이

김매기 등 농사 전반에서 일상적으로 쓰던 호미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지형에 맞는 농사 도구를 개발하다 보니까 지역별로 특징이 나타나고 또 주변에서 어떻게 재료를 확보할 수 있냐에 따라서 조금 형태가 달라지는 거지요.”

김재균 관장 / 농협 농업박물관

지역의 자연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개발되고 발전 해 온 전통의 농기구들.
농부의 손에 안성맞춤으로 만들어진 농기구는 힘든 농사를 돕는 최고의 일꾼이었습니다.

철제 농기구와 농서의 등장

우리 선조들은 언제부터 농기구를 사용했을까요?
한반도에서 농경이 시작된 것은 신석기 시대.

이 시기에는 돌이나 짐승의 뼈나 뿔 등을 이용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면 벼농사 기술이 한반도로 전래되면서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나무나 돌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였는데요, 반달 돌칼이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농기구죠.

철기시대가 도래하자 농기구도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처음으로 소를 부려서 논밭을 갈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3년(502)

4~6세기경에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고 소를 이용한 우경이 시작되었는데요, 철제 농기구는 농업 생산성을 높였으며 사회 발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농업이 경제의 기반이 되면서 그만큼 농기구도 중요하고도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산국이 동북여진의 침략을 받아 농사일을 못하게 되자, 이원구를 보내 농기구를 하사하였다.

-『고려사』 현종 9년(1018) 11월 8일

조선 전기에 이르면서 대부분의 농기구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조선 초기부터 등장하는 농서인데요, 중국 것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풍토에 맞게 지은 농서를 편찬한 것이죠.
그 처음이 바로 농사직설입니다.

풍토가 같지 않으면 농업도 같을 수 없다하여 세종이 각 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주현의 노농들에게 지역에 따라 이미 사용하고 있는 농업기술을 자세히 듣고 수집하도록 해서 본서를 편찬하게 되었다.

-『농사직설』 서문

이후 『금양잡록』, 『농가월령』, 『산림경제』 등이 차례로 편찬되며 농기구 사용과 농법 등을 체계화하여 백성의 농사를 돕고자 했습니다.

1960년 대 경운기 등장 이후, 자동화된 농기계에 그 자리를 내 주며 점차 전통 농기구의 쓰임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기구에 가득 벤 백성들의 땀과 수고의 의미는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농기구는반달 돌칼이다.
2. 논밭의 흙을 갈아엎을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농기구는 쟁기이다.
3. 농사직설은 우리나라 풍토에 맞게 지은 첫 농서이다.

해설

우리 역사에서 농경, 즉 농사짓기가 시작되면서 농기구가 등장하였다. 신석기를 사용하던 시대에 주민들은 정착 생활을 통해 농사짓기를 시도하고 지속해나갈 수 있었다. 농경이 시작될 당시에 활용한 농기구는 주로 돌로 만든 몸통을 나무로 만든 자루로 연결시킨 석제 농기구였다. 당시의 대표적인 갈이 농기구로 돌도끼를 들 수 있고 석제 농기구 이외에 나무로 제작한 목제 농기구도 활용되었다.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면 갈이 농기구로 보습, 괭이, 따비 등을 활용하였다. 특히 따비는 용도에 따라 날 부분을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 이용하였다. 그리고 재배한 곡물을 수확하는 데 반달돌칼을 이용하여 곡물의 이삭을 수확하였다. 그리고 곡물조리용 농기구로 갈돌과 갈판을 사용하였다. 청동기는 무기와 의기 등으로 제작되었을 뿐이고 농기구까지 청동재질로 만들지는 않았다.

철기시대에 들어선 이후 철제날을 붙이는 방식을 통해 철제 농기구가 제작되어 점차 점진적으로 보급되었다. 2세기 무렵 철제날을 붙인 따비와 주조 쇠괭이를 갈이농기구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된 이른바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진 장면이 바로 따비와 괭이를 사용하던 농작업 모습이다. 철기시대에 따비, 괭이, 낫 등을 철제로 제작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였다. 철제 낫은 반달돌칼과 달리 이삭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의 줄기를 베어내는 용도를 갖고 있었는데, 낫을 사용하면서 곡식 단을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 3~4세기를 거치면서 U자형 따비와 쇠스랑을 중심으로 갈이 농기구를 활용하였다. 그리고 4세기 후반 이후 따비가 쇠퇴하고 살포가 나타났다. 수장층은 U자형따비+쇠스랑(갈이)→살포(김매기)→낫(수확)이라는 농기구로 농사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5세기 중엽 이후 U자형따비, 쇠스랑, 살포, 낫 중심으로 농기구가 크게 보급되었고, 또한 우경(牛耕)의 장려와 더불어 철제 보습이 널리 보급되었다. 그 결과 6세기 무렵 우리 농업 생산에 활용하는 기본적인 철제 농기구의 구성체계가 마련되었다. 이후 지역적으로 농기구가 개량 발달하였고, 농작업의 성격에 따라 보다 세분화된 농기구를 개발 활용하였다.

우리나라 농업생산에 동원된 농기구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선 전기 15세기 초반에 세종의 명령에 따라 편찬된 『농사직설』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농업기술을 최초로 수합하여 정리한 『농사직설』은 바탕으로 각종 농작업과 그에 대응하는 여러 농기구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충실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논밭을 갈아주는 작업에 쟁기, 따비, 괭이 등을 활용하고 특히 논을 다스리는 데에 써레를 이용하였다. 논과 밭의 김매는 작업에 호미를, 작물 수확 작업에는 낫을 이용하였다. 농작업과 농기구가 서로 대응하는 구성체계가 치밀하게 지역별로 만들어졌고, 농기구의 세부적인 구조와 형태가 지역별로, 그리고 농작업에 따라 섬세하게 개량되고 개선되었다.

우리나라 농업생산에 활용된 농기구는 재질, 쓰임새, 모양, 사용법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농기구를 쓰임새 즉 용도에 따라서 분류하고 어떠한 농기구들이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면서 농기구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길 수 있다. 농업에 관련된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 소장, 전시된 농기구는 대개 쓰임새에 따라 농기구를 분류하고 있다. 몇몇 농업 관련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는 농기구를 계절에 따라 분류하여 전시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쓰임새에 따라 농기구를 분류하고 또한 주요한 개별 농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갈이 농기구는 논밭의 표면을 파고 갈아서 뒤집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갈이 농기구는 따비, 괭이, 가래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의 힘을 이용한 쟁기였다. 쟁기의 구조에서 쟁기술, 보습, 볏 등이 중요한 부품이었다. 그리고 볏은 쟁기가 논밭의 흙을 갈 때 보습이 파 올린 흙덩이, 즉 쟁깃밥을 완전히 뒤집어 토양의 전면적인 기경을 가능하게 해주는 부품이었다.

갈이 작업으로 생긴 흙덩이를 잘게 부수어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작업이 삶기였다. 삶기 농기구에는 써레, 번지, 나래, 곰방메, 고무래, 발고무래, 끙게 등이 있다. 씨를 뿌리는 데 사용한 농기구는 종자를 담아 두는 그릇 따위였다. 다래끼, 종다래끼 등 두세 가지는 주로 씨를 담아서 뿌리는 용도만으로 사용되었다.

김매기는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속아주거나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를 뽑아주는 일이다. 김매기에 사용한 농기구가 바로 호미이다. 호미의 날 모양은 쓰이는 지역의 자연 조건에 따라 달랐다. 거름주기는 농작물의 성장을 도와주는 거름을 만들어 논밭에 넣어주는 일이다. 오줌장군은 오줌 퍼 나르기에 사용하였고, 삼태기는 거름을 담아서 뿌리는데 사용한 그릇이었다.

논밭에 물을 퍼 올리는데 이용한 물대기 농기구는 맞두레와 용두레이다. 맞두레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두레를 잡고 물을 푸는 기구이며, 용두레는 한사람이 사용하는 것으로 긴 장대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그 꼭지에 두레를 매어달아 사용하는 것이었다. 논밭에서 곡식을 거두는 수확 작업에 활용한 농기구는 낫이다. 낫은 곡물 줄기의 밑둥을 베어내는 농기구이다. 낫으로 거둔 곡물에서 낟알을 털어내는 작업을 하였다. 개상, 벼훑이, 도리깨 등을 활용하였다. 일꾼들이 볏단, 보리단을 들고 내리쳐서 곡식 알갱이를 떨어낼 수 있게 만든 나무로 맡든 틀이 개상이다. 그리고 도리깨는 보리 이삭에 달린 곡식의 낟알을 두드려 털어내는 데에 쓰는 농기구이다.

곡물의 낟알에서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과 낟알을 찧어서 곡식 가루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는 갈돌에서 기원한다. 갈돌에서 한편으로 맷돌-연자방아처럼 주로 갈기 용도 농기구가 발전하였고, 또한 절구-디딜방아-물레방아 등 찧기, 빻기 용도 농기구가 발전하였다. 그리고 곡물 등을 운반하는 데 활용한 농기구로 지게가 있다.

삼베, 명주, 모시, 무명 등의 실을 만들어 피륙을 짜는 길쌈에 사용하는 농기구가 있었다. 바로 베틀, 물레, 씨아 등이었다. 베틀은 옷감을 짜는 연장이고, 물레는 솜이나 털 따위의 섬유를 자아 실을 뽑아내는 데 쓰이는 틀이며, 씨아는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 돼지, 개, 닭 등을 기르는데 작두, 구유, 가마솥, 쇠죽바가지, 어리, 둥우리 등의 농기구를 이용하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 농업기계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되면서 농작업의 세밀한 구분과 그에 대한 농기계의 활용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갈이 작업뿐만 아니라 수확 후 처리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농기계가 널리 제작되는 등 커다란 발전을 보이고 있다. 사실 해방 이후 1960년 초반까지 기간 동안 전통적인 철제 농기구 사용이 압도적이었다. 당시 쟁기, 써래, 삽, 괭이와 같은 인력이나 축력에 의존하는 농기구로 전답을 갈고 고르게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농기계 도입과는 별도로 1964년에는 전답을 깊이 갈아주는 심경(深耕)을 통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축력 쟁기보다 더 깊게 갈 수 있게 해주는 축력용 재건쟁기가 개발되어 보급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동력경운기의 도입선발을 위한 적응성 시험을 진행하였고, 그리하여 1960년대 초 동력경운기가 보급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농업기계화에 첫발을 떼게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63년부터 6마력 동력경운기가 국산화되어 생산 보급되면서 농기계의 확산이 가속화되었다. 이에 따라 인력이나 축력을 활용하는 농기구는 경운기용 쟁기, 로타리 등으로 점차 대체되었으며 그 후 1980년대부터는 트랙터의 본격적인 보급으로 승용화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농촌노동력이 더욱 감소하고 노임이 상승함에 따라 모내기철마다 되풀이되던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앙 작업의 기계화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에는 승용이앙기가 도입되어 적응성 시험을 거쳐 농가에 보급됨으로써 이앙 작업의 기계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또한 시비작업의 기계화도 197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1979년 동력경운기 부착형 퇴비살포기를 개발하였고 1980년대에는 논토양 개량 사업의 일환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석회 및 규산질 비료의 사용 확대를 위하여 인력과 경운기용 석회살포기를 개발 보급하여 토양 개량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었다.

곡물의 수확 작업은 보통 예취, 결속, 탈곡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힘든 작업으로 기계화 요구도가 큰 작업이었다. 수확 작업에 투입되는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하여 1950년대 말 선낫과 기계낫을 보급하였으나 힘이 많이 들어 소량 보급에 머물렀고, 1960년대 말에는 인력 예취결속기를 개발하였으나 포장 손실이 커서 실용화에 지장이 많았다. 또한 1970년대 중반 이후 벼를 베는 용도의 바인더라는 수확용 농기계가 도입되었지만, 벼의 알곡이 많이 떨어지는 손실이 과도하여 보급이 제한적이었다. 1980년대 이후 수확 관련 작업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콤바인이 도입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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