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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요즘 글씨 쓸 일이 많이 줄어들었죠. 하지만 좋아하는 글을 남기거나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면 손 글씨가 정성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선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글씨에 마음과 정신이 깃든다고 여기며 그래서 그 곁을 함께 하는 문방구를 귀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쓰기와 그리기의 도구!
그 이상의 존재로 여겨진 옛 문방구들!
그 이야기를 지금 만나봅니다.

선비들의 소중한 친구 - 문방사우

문방사우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선비 방의 네 친구라는 뜻으로 학문을 하는 선비가 늘 가까이 두는 네 가지 물건을 친구에 빗대었는데요, 종이와 붓, 먹과 벼루를 일컫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제지술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방법으로 종이를 만들어 왔는데요, 이 전통 종이를 한지라고 합니다.

한지의 주재료는 닥나무입니다.

“닥나무 껍질을 삶아서 표백하면 이렇게 돼요. 서로 엉켜서 한지가 되는데 섬유가 길어서 얼기설기 잘 어우러지면 종이가 질겨지죠.”

장응열 한지장(韓紙匠) /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32호

종이를 뜨는 것을 초지라고 하는데요, 앞 물질, 옆 물질을 반복하며 한 장 한 장 떠냅니다. 초지 실력에 따라 종이의 질도 달라집니다.

한지는 광택이 도는 아름다운 흰 빛에 매끄러우면서도 질긴 특징이 있어 고려시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요, 도침 작업에 비결이 있습니다.

“침을 하면 종이가 단단하게 다져져 오래 보전할 수 있는 내구성이 강한 한지가 됩니다.”

장응열 한지장(韓紙匠) /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32호

천 여 년 전의 종이가 아직까지 건재한 것만 보아도 한지의 우수함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붓은 먹물 등을 묻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필기구입니다. 일반적으로 족제비나 토끼, 노루, 염소 등 포유류의 털을 이용한 모필이 주로 만들어졌으며 사군자용, 서예용, 초상화용 등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했습니다.

붓은 털을 얼마나 잘 골라내는가에 따라 그 품질이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털 고르기와 가르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겉모는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좋잖아요. 살아 있잖아요. 겉모는 고우면서 털발이 살아있고 심소도 역시 살아 있지만 털이 좀 짧죠. 조금 굵으면서”

전상규 필장(筆匠) /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호

단단한 속 털에 부드러운 바깥 털을 더하면 여리면서도 탄력 있는 붓이 완성됩니다.

“글씨를 쓸 때 부드럽게 따라오면서 허리 부분이 살짝 움직여 주는 것이 부드러운 탄력입니다. 끝만 부드럽게 놀고 허리 부분이 안 놀아주면 붓이 제대로 안 됩니다.”

전상규 필장(筆匠) /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호

세심한 손끝에서 완성되는 한 필의 붓!
정성으로 만든 붓 끝에서 역사의 기록과 시대의 명작들이 탄생하였습니다.

먹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하는 재료입니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아서 먹물을 만들어 쓰는 것이죠. 종이와 흑백의 대비를 이루며 먹물의 농담, 즉 진하고 연한 정도에 따라 작품의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먹은 소나무의 송진을 태우거나 삼기름, 오동나무 기름, 콩기름, 참기름 등을 태워 나온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만듭니다.

“8cm 되는 송연묵 하나 만드는 데 한 30년 이상 된 소나무 한 그루를 다 태워야 됩니다. 뿌리부터 기둥, 잎사귀까지 전부 다 태워야 먹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상묵 먹장(墨匠) / 전통 먹 숙련 기술 전수자

시간이 오래되어도 퇴색하지 않고 어떠한 바탕 위에 사용되었더라도 부식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먹!

그래서 수 백, 수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글씨와 그림을 오늘 날에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벼루는 먹을 가는 도구입니다. 벼루에 물을 넣고, 고형으로 된 단단한 먹을 서서히 갈면 고운 입자로 풀어져 먹물이 됩니다.

벼루는 도자기, 옥, 은, 동, 철, 나무 등 여러 재료를 썼지만 대개는 돌로 만들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현재의 충남 보령 지역에서 나온 검은 돌로 만든 남포연이 유명합니다.

“좋은 돌로 치는 것이 백운상석인데요, 두드려 봅니다. 경쾌한 쇳소리가 나면 절단해도 (내부에) 별로 흠이 없다는 겁니다. 좋은 벼루로 먹을 갈면, 먹이 곱게 갈리면서 먹물에 윤기가 납니다. 그리고 (벼루 안) 먹물이 15일 이상 마르지 않고”

김진한 벼루장(硯匠) /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6호

다양한 조각을 새길 수 있어 공예품으로 감상하기도 하는 벼루는 무수히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선비들은 벼루를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양의 도구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벼루를 보면 소장자의 품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어떤 무늬도 새기지 않은 이 소박한 벼루는 조선시대 영조의 어필벼루입니다.

벼루 뒷면에는 임금이 태어나서 70대가 되기까지 겪은 일생의 주요한 8개의 사건을 어필로 기록해 넣었습니다.

自醒翁七十一歲望八試眼年表書
자성옹71세망팔시안년표서

-71세 노년의 시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연표를 쓰다

“자성옹은 영조 임금의 노년 시절의 별호였어요. 임금이 쓰신 벼루로는 크기 면에서도 크고 외곽에 어떤 무늬도 새겨져 있지 않아서 평소에 영조 임금이 실천했던 검약 생활을 대변하는 벼루라고 생각합니다.”

김지나 학예연구사 / 수원박물관

金珠在前視如泥 / 금과 구슬이 앞에 있어도 흙처럼 보니
視猶不見況更擲 / 보아도 못 본 체, 하물며 집어 던지리
松煤楮膚有何好 / 그런데 먹과 종이만은 무엇이 좋길래
乃獨令吾手未釋 / 나로 하여금 손에서 줄곧 못 놓게 하는지
此心有欲皆不廉 / 마음에 욕망이 있으면 다 청렴하지 못하나
於此戀戀無奈癖 / 이것들에 연연함은 버릇이라 어쩔 수 없네

- 박은 /『속동문선』

선조들에게는 필기구 그 이상의 의미였던 문방사우!

이들을 귀하게 대접하는 분위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문방청완(文房淸玩)’의 풍조로 이어졌으며 궁중과 사대부의 장식용 그림 소재로도 애용 되었습니다.

한낱 도구가 아닌 자신의 뜻을 알아주는 평생의 친구로 여겨진 문방사우!

지금 여러분의 책상에도 문방사우와 같은 벗이 있습니까?
여러분만의 문방사우는 무엇인가요?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선조들은 종이, 붓, 먹, 벼루를 문방사우라 부르며 친구처럼 여겼다.
2. 벼루을 갈아 나온 먹물을 에 묻혀 종이에 쓴다.
3. 조선시대에는 서화나 문방용품을 감상하는 문방청완의 풍조가 있었다.

해설

1. 문방사우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선비가 글방에서 늘 곁에 두고 친구처럼 여기는 네 가지의 도구인 종이, 붓, 먹, 벼루를 말한다. 문방의 네 제후[文房四侯] 또는 문방의 네 보물[文房四寶]이라고도 했다. 문방은 문한(文翰)을 다루는 곳, 즉 선비[士]의 방이라는 뜻이다.

2. 종이

종이[紙]는 식물성 섬유를 원료로 얇게 만든 것으로 서사(書寫)를 하기 위한 물건이다. 문방사우의 하나이며 선비들의 글방에 필수적으로 있었던 도구다. 종이의 기원은 파피루스(papyrus)에서 시작하는 데 보다 진보된 종이 발명은 중국의 종이 제작에 관한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중국에서 개량화 된 제지술이 한국과 일본에 전래되어 점차 나라마다 주재료의 구성, 제조 과정이 차이를 보이며 변화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는 한지(韓紙)라 한다. 전통적으로 닥나무를 재료로 하여 고유의 초지(抄紙) 방법,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더해져 우수한 종이로 거듭났다. 특히 종이 표면을 두들기는 가공법인 도침(搗砧) 과정은 우리나라에서만 거치는 전통 방식이다. 도침을 거친 한지는 광택, 내구성 등 심미적인 측면을 비롯하여 사용면에서도 우수하여 서화, 인쇄의 고급 재료로 인식되었다.

한지의 우수성은 이미 고구려시대부터 중국에 널리 알려졌으며 인쇄술이 발달했던 고려시대에 는 빛깔이 희고 광택이 있는 종이로 인식되어 중국인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문서, 서책의 인쇄와 간행이 활발해지며 제지술이 보다 발달하게 되어 우리나라 종이 고유의 특수성을 갖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간행된 서책, 사경, 불화 등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왕실문서, 임금의 어필이 쓰인 종이는 천년 이상 세월이 흘러도 변형이 없다. 한지는 내구성과 보존성 등에 있어서 뛰어나며 이러한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3. 붓

붓[筆]은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거나 안료를 묻혀 그림을 그리는 도구다. 문방사우의 하나로 옛 선비들의 글방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자 기록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여겨져 왔다.

붓의 모양은 크게 필호와 필관으로 구성되는데 필호는 대부분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족제비털, 토끼털로 만든 붓이 탄력성이 좋아 선호되었으며 다람쥐털, 족제비 꼬리털을 재료로 한 붓도 우수한 것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는 족제비털 붓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붓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왕실에서 사신에게 전하는 선물용이나 신하에게 내려지는 하사품이 될 정도였다. 필관 재료는 속이 비고 줄기가 강한 대나무가 오래전부터 애용되어 왔다. 대나무 붓대는 마디를 장식적으로 활용하기도 했고 매끈하게 다듬기도 했다. 그 외에 바다거북의 껍질[玳瑁], 수정, 자단(紫檀), 상아(象牙), 산호(珊瑚)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나무에 주칠을 입히거나 칠보(七寶), 도자(陶磁), 나전칠기를 이용한 장식성을 더한 붓도 만들어졌다. 붓의 쓰임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서화에 쓰이는 붓은 일정한 탄력과 적정한 길이를 필요로 한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각기 쓰임에 따라 재료와 크기가 다른 종류별 붓을 갖추어 두고 사용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붓은 경남 창원 다호리(茶戶里)에서 출토된 붓이다. 아울러 일본 정창원(正倉院)에 전하는 통일신라시대 문서를 비롯하여 중국 길림성 집안현 모두루(牟頭婁) 무덤의 묵서 묘지의 정교한 필사체는 붓의 발달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백제의 도제 벼루[陶硯]도 문자사용의 확대와 붓의 사용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4. 먹

먹[墨]은 종이, 붓, 벼루와 함께 문방사우의 하나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재료다. 먹의 성분은 소나무나 식물의 기름을 연소시켜 생기는 그을음[煤煙]과 동물의 뼈나 가죽에서 추출한 동물성 단백질인 교(膠)로 구성된다.

먹의 종류는 크게 송연묵과 유연묵으로 나뉜다. 송연묵은 소나무의 송진을 태운 그을음을 원료로 만든다. 그을음 입자가 크기 때문에 빛 반사가 적어 광택은 약한 편이나 번짐이 적어 서예용 먹으로 선호되며 회화용으로 사용했을 때는 발묵 표현에 좋다. 유연묵은 식물성 기름을 태워 얻은 그을음을 원료로 만든다. 유연묵은 그을음 입자가 작아 외부에 의해 변화가 적은 편이라 인쇄에 좋은 편이며 특히 물과 함께 했을 때 농담의 효과가 잘 표현되는 장점이 있어 수묵화 재료로 선호된다. 우리나라는 소나무가 많아 송연을 얻기 용이했기 때문에 품질이 매우 우수한 송연묵을 지역마다 생산했고 우수성은 고려시대부터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고려시대 먹은 〈단산오옥丹山烏玉〉인데 단양의 대표 토산품이자 가장 좋은 먹이었다. 송연묵은 조선시대에도 생산되었고 황해도 해주(海州)가 대표적인 생산지로 알려졌다.

먹은 서사를 위한 재료로도 사용되었지만, 왕실에서는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화려한 장식적 성격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귀한 서화 재료였던 까닭에 문인들에게 친교를 위한 매개물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먹은 마모되어 닳아 없어지지만, 바탕 위에서 발현되는 현색(玄色)의 농담(濃淡)이 천변만화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먹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신(修身)의 도구로도 인식되었다.

5. 벼루

벼루[硯]는 모필 붓으로 글씨를 쓰기 위해 먹을 가는 도구다. 벼루는 물을 담는 부분인 연지(硯池), 먹을 가는 부분인 연당(硯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벼루의 연당과 연지 주변에는 여러 문양을 장식하여 화려함을 더한 경우가 많았고, 소유자를 식별할 수 있는 인장을 새기거나 자기 수양을 위한 글귀 혹은 기념이 되는 내용을 새겨 넣기도 했다.

벼루는 재질, 모양, 조각된 문양, 용도, 원석의 산지 등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재질에 따라 토연(土硯), 도연(陶硯), 동연(銅硯), 옥연(玉硯), 전연(塡硯), 와연(瓦硯), 칠연(漆硯), 목연(木硯) 등으로 분류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시대에 따라 토연, 도연, 석연이 사용되었다. 모양에 따라서는 원형, 타원형, 사각형, 다각형, 풍자형(風字形) 등이 있으며 그중에 사각형이 가장 많다. 조각된 문양도 다양하여 동물문은 봉황, 용, 거북, 학, 잉어 등이며 식물문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파초, 하엽, 소나무, 포도 등이 조각되었다. 이러한 문양들은 출세, 부귀, 장수, 다산 등 기복(祈福)적 의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이상을 비롯하여 민간 신앙, 고사(故事)와 관련한 것이다.

우리나라 돌벼루의 재료가 되는 대표적인 원석 산지로는 충청남도 남포(藍浦)가 널리 알려졌다. 남포석 외에도 종성의 창석(蒼石), 위원의 자석(紫石, 花草石), 북청의 청석(靑石), 안동의 마간석(馬肝石)·성천옥(成川玉), 풍천의 청석(靑石), 평창의 적석(赤石)도 벼루의 돌로 우수했다.

문인들의 글방에서 늘 갖추고 있어야 했던 문방사우 중에서도 벼루는 으뜸으로 여겨졌다. 세월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벼루는 평생을 함께하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또한 서사를 위한 실용적 목적과 함께 외형에 조각된 미적인 가치가 강조되어 수집과 완상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성질이 부드럽고 아무리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벼루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양의 도구로 여러 문인서화가의 각별한 관심을 받아왔다.

6. 문방사우와 문방청완

문방사우는 글씨나 그림을 위한 기본적인 필기구였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문인들의 이상을 구현하는 대상으로 애호되어 왔다. 문방청완(文房淸玩)이라고 불리는데, 청아하고 아름다운 서화나 문방을 가까이 두고 감상하며 몰입하는 취향을 이르는 것이다.

문방구를 애호하는 취향과 문화는 중국 북송시대에 성행하였고 남송시대에 이러한 경향이 한층 심화되면서 명, 청대 이후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 왕족과 귀족들의 서화 애호 풍조가 시작되어 이후 조선시대 문인 사대부를 중심으로 문방 문화와 문방구에 대한 관심이 활기를 띠었다. 조선 후기에는 글씨와 그림을 수집하는 취미가 성행하게 되면서 문인들 사이에서는 명품 문방구에 대한 감식안을 갖는 것이 점차 일반화되었다. 문방구를 애호하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품등을 감별하는 안목은 교양의 척도로 중요시되었으며 문인들에게 있어 명품 문방구를 수집하는 것은 고상한 품격을 드러내는 방편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 이후 소장 가치와 경제적 이익이 척도의 대상으로 재인식되면서 수집 목표와 감식 기준도 변화하게 되었다.

오랜 시기 동안 종이, 붓, 먹, 벼루의 문방구는 글과 그림을 중요시하는 문인들의 보물이자 벗으로 여겨져 왔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문예활동의 주요 도구였으며 시를 짓고, 편지를 주고받는 등 소식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문인의 이상을 구현하는 도구였던 문방사우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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