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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많은 전통 문화가 보존돼 있는 안동 하회마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얼마 후...
할머니 말씀처럼 방이 뜨듯해지는데요,네. 맞습니다. 그 비밀의 기술이 바로 온돌입니다.
온돌은 그 옛날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는 너무도 새로운 문물이었습니다.

조랑말의 말린 똥까지 때는 여관의 방은 언제나 과도하게 따뜻하다. 지친 몸을 거의 지지다시피 덥혀주는 이 정도의 온도를 한국의 길손들은 아주 좋아한다.

- 이사벨라 비숍『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rs)』

현대에까지도 애용되고 있는 우리의 독특한 난방 기술인 온돌!
그 안에 숨어 있는 과학과 역사를 만나봅니다.

기어가는 열로 방을 데우다. 온돌의 과학

우리 고유의 난방장치인 온돌. 순우리말로 ‘구들’이라 부르죠.

서양의 벽난로가 방 안의 공기를 직접 데우는 대류식 난방법이라면 온돌은 바닥을 데워 따뜻해진 바닥의 복사열로 공기를 데우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온돌 기술의 핵심은 바닥을 데우는 ‘고래’라는 장치에 있습니다.

고래는아궁이에서 땐 불의 열기가 굴뚝으로 나갈 때까지 지나는 길입니다. 고래에 열기가 오래 머무는 만큼 방 안 온기도 길게 유지되는데요, 그래서 선조들은 구들을 놓을 때 몇 가지 장치를 더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래개자리. 열을 가두고 식은 연기만 빼내는 트랩 같은 장치죠. 덫이죠, 일종의 덫. 불을 눕혀서 사용한다. 열기를 가둬두고 식은 연기는 밑으로 뺀다. 이것이 우리 구들의 탁월한 기능입니다.”

김준봉 / 한국온돌학회 회장

온돌의 핵심 구조인 고래는 놓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일자로 한 두 줄 길게 놓기도 하고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게 하거나 사방으로 흩어 놓기도 하는데요, 고래의 모양에 따라 열효율도 달라집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온돌 유적을 만날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회암사지는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온돌 유적입니다.

“가장 주목해 볼 만한 온돌의 유구라고 한다면 6단지에 있는 서승당 터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서승당 터에서는 ‘ㅌ’자 형태의 돌출된 탁상식 구조 구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마주 보게 돼 있어가지고 굉장히 큰 규모로 나타났는데 오랜 열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온돌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최석현 학예연구사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ㅌ’자형의 고래는 온돌 유적 중에서도 특이한 구조로 하동의 칠불사에도 비슷한 구조의 온돌이 있습니다. 경남 하동 칠불사에는 한자 ‘亞’자를 본 뜬 ‘아자방’이라는 선방이 있는데요, 이 온돌은 한 번 불을 때면 49일간 따뜻하고 100일간 온기가 유지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해체·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중온돌 구조에 그 열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그 비밀의 문이 열리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불을 눕혀 고래에 가두고 그 열을 오래오래 이용하고자 다양한 장치를 고안해 활용한 우리의 선조들!

온돌은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가 돋보이는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2천년을 이어 온 문화 - 온돌의 기원과 전승

우리의 전통 난방법인 온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온돌을 사용하였을까요?

온돌의 시작은 시간을 거슬러, 약 2천 년 전, 북옥저로 올라갑니다.

북옥저에서 기원한 온돌은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를 거쳐 중부로, 또 한 갈래는 남부로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초기 온돌은 지금 온돌과는 모습이 달랐는데요, 실내에 아궁이를 두고 벽면을 따라 1자형이나 ㄱ자형으로 구들을 얹는 쪽구들이었습니다.

서민들은 대부분 흙 침상인데, 땅을 파서 쪽구들을 만들고 그 위에 눕는다. 고려는 겨울이 매우 추운데다 솜옷 같은 것이 적다.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바닥 전체에 구들을 놓는 온구들은 고려 시대에 서서히 등장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확산되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민가나 사찰 등에서 온돌을 놓았으며 상류층에서는 노인과 병자를 위한 시설로 한 두 칸 놓았습니다.

여러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백 년 전에 있던 공경대부의 큰 주택을 손꼽아 보면 그 가운데 온돌은 1〜2칸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노인과 병든 자가 거처하기 위한 곳이요, 나머지는 모두 판자 위에서 거처했다.”라고 하였다.

- 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

온돌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전 계층에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침실은 모두 온돌인데, 사면은 벽으로 되었고 창문을 설치하였으니 중국의 항과는 다르다.

- 홍대용 『담헌서외집(湛軒書外集)』

조선후기에는 궁궐 안에서도 온돌을 사용하였습니다.

정조 즉위년(1776)에 건립된 주합루.
어제·어필을 보관할 목적으로 건립한 2층 건물인 주합루의 1층인 규장각에 온돌이 있습니다. 왕비의 침전인 경복궁 교태전의 아미산 굴뚝과 대비의 침전인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은 온돌에 아름다움까지 더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향원정에서는 도넛 형태의 특이한 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온돌의 하중 문제 때문에 그 전까지는 2층, 3층 구조의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게 다 단층 구조로 바뀝니다. 또 하나는 온돌은 바닥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이게 좌식 생활을 중심으로 한 문화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그게 완전히 사라지고 소반 문화 같은 경우도 온돌의 영향이 나타나는데 일상생활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죠.”

송기호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추위를 이겨내고자 고안해 낸 선조들의 빛나는 전통 기술인 온돌!

2천 여 년 이상을 함께 해 온 온돌은 한국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며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온돌의 핵심 구조는 아궁이, 고래, 굴뚝이다.
2. 온돌은 한반도 북부에서 기원하였다.
3. 방 한 쪽을 데우는 쪽구들 에서 방 전체를 데우는 온구들로 변화했다.

해설

주거 건물의 내외에서 취사와 난방을 목적으로 불을 피우는 시설을 ‘취난(炊煖) 시설’이라고 한다. ‘취(炊)’는 ‘불을 땐다’는 의미이고, ‘난(煖)’은 ‘따뜻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전통 취난 시설 중에는 노지(爐址), 부뚜막[竈], 그리고 온돌[突]이 있다. 청동기시대까지는 주거지 중앙에 노지를 만들다가, 철기시대에는 주로 벽에 붙여 만든 입체적인 부뚜막을 설치하였고, 뒤이어 한반도 북부에서 유래한 온돌이 등장하게 된다. 노지는 선사시대에 정점을 이루었고,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쇠퇴하였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는 거의 자취를 감춘다. 고고학적으로 발견되는 노지는 대부분 상부 시설이 없이 얕은 구덩이 형태로 드러난다. 부뚜막은 흔히 온돌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처음에는 연도나 구들이 달리지 않은 독립된 시설로 설치되었다. 즉 불을 때는 아궁이, 솥 걸이와 솥 받침, 배연구만이 달린 독립부뚜막이다. 노지가 평면형이라면, 부뚜막은 입체형으로서, 보다 발전된 형태의 취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온돌은 불을 때는 부뚜막(또는 아궁이)에, 열기를 머물게 하고 발산하는 구들(또는 고래), 연기를 배출하는 연도와 굴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뚜막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의 취난 시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온돌이다. ‘(독립)부뚜막’과 온돌의 가장 큰 차이는 열을 머물게 하는 구들의 존재 유무이다. 구들이 없는 독립부뚜막은 온돌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온돌은 ‘열을 머물게 하는 고래를 활용하여 바닥으로부터 실내를 데우는 장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온돌은 구조적으로 쪽구들과 온구들 두 가지로 구분된다. 쪽구들은 방의 일부에 구들을 놓는 부분 온돌이고, 온구들은 방 전체에 구들을 놓는 전면 온돌이다. 쪽구들의 아궁이는 실내에 위치하게 되고, 온구들의 아궁이는 실외에 위치하게 된다. 온구들에서 아궁이가 방 밖에 설치됨으로써 주거 공간이 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온돌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서는 온돌을 한국의 전통 취난 시설 중 하나로 보면서, (독립)부뚜막에서 한 단계 발전한 취난 시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온돌의 구성 요소를 셋으로 보았는데, 부뚜막, 구들, 연도와 굴뚝이 그것이다. 열을 머물게 하는 구들의 유무로 온돌과 부뚜막을 구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온돌은 ‘열을 머물게 하는 고래를 활용하여 바닥으로부터 실내를 데우는 장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의 온돌방이 널리 보급되었다. 주거문화가 서양식으로 개조되고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온수순환을 통해 방바닥을 덥히는 방식의 온돌이 널리 보급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온돌의 구조 개선에 관한 건축공학적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이들은 대체로 부뚜막아궁이, 구들장, 연도와 굴뚝과 같은 온돌의 전통 구성요소를 서양식 또는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였다.

온돌에 대한 건축공학적 연구가 이뤄졌던 1970년대부터 온돌 문화의 역사를 검토하는 연구도 함께 수행되었다. 특히 온돌의 기원에 관해서는 ① 북위(北魏) 관계사(觀雞寺)의 난방인 ‘항(炕)’으로부터 고구려로 전래했다는 설, ② 온돌의 고구려 기원설이 있었는데, 문헌 및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한반도 온돌의 발상지가 고구려가 아니라 북옥저(北沃沮)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 중국, 러시아 삼국의 접경지가 주요 활동무대였던 북옥저에서 처음 온돌이 기원하였고, 이것이 고구려로 전파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북옥저의 온돌이 한반도의 북부와 남부로 각각 전파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에서 조선전기에 이르기까지 온돌은 중심부 지배층이 아니라 주변부 피지배층의 난방 문화로 유지・발전하였다고 하였다. 온돌문화는 조선후기 이전까지는 서민의 문화였고, 온돌이 지배층에 확산한 것은 조선후기에 들어서라고 했다.

온돌은 기원전에 동지중해, 몽골, 극동 등에서 각각 발생하였다. 이 지역들을 지도에서 표시해 보면 북반구에서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발생 시기도 거의 유사하다. 아마도 유사한 기후환경 내지 자연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온돌이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가령, 기원전 4~3세기 무렵 연평균 기온이 3~4℃에서 -2℃ 정도로 떨어지는 기후 변화가 일어났는데, 북옥저인들은 이런 한랭화에 적응하면서 쪽구들을 발명하였을 것이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위도에 있었던 북흉노인이나 그리스・로마인도 동일한 발상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까지 온돌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삼림 황폐화 문제, 연료의 비효율적 활용 문제, 위생 문제를 지적하였다. 나아가 조선의 주거문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온돌을 제거함으로써 그로부터 파생된 정신문화를 말살하여 식민지지배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일제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온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하였다. 그들은 온돌이 다다미에 비해 청소하기 쉽고 청결하다는 점, 온돌방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일본인들도 거주 형식이 원래 좌식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온돌 문화에 적응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온돌을 선호하였다. 그리고 일본인 민간업자들에 의한 개량 온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량 온돌의 종류로는 용상식(用上式) 온돌, 갱생식(更生式) 온돌, 대야식(大野式) 온돌 등이 있으며 벽돌이나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신식 재료를 사용하는 개량온돌이 고안되기도 했다.

현대의 온돌은 20세기 초에 개발된 것이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oyd Wright, 1867~1959)가 1914년 일본에서 본 한국의 온돌을 보고 영감을 얻어 ‘온수순환식바닥난방(Gravity Heat, 중력난방)’, 즉 온수보일러식 난방을 개발하였다. 국내에서는 1950년대까지 전통적인 온돌이 사용하다가 점차 연탄을 때서 열기가 고래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나, 연탄가스중독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연탄가스 문제와 고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수를 이용한 난방 방식으로 바뀌어갔다. 온수관이 종래의 고래를 대신함으로써 열기가 구들장을 직접 가열하는 방식에서 온수를 통하여 간접 가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구조의 단순화와 경량화까지 이루었다. 연료도 연탄, 석유, 가스 등으로 바뀌어갔다. 온수관 대신에 전기 패널을 이용한 난방도 보급되었다. 아파트의 출현으로 재래식 온돌은 현대식 온돌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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