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교육과정은 1981년 12월에 고시되었다. 제4차 교육과정에서는 “민주주의의 토착화, 복지사회 건설, 정의 사회의 구현, 교육 혁신, 문화 창달”이라는 제5공화국의 국정 지표를 바탕으로, “민주, 복지, 정의 사회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국민을 길러내는 것”을 교육 목표로 제시하였다. 또,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교육내용을 정선하여 통합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도덕적인 인격의 형성과 민족 공동체 의식의 고양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제4차 교육과정에서 역사교육과 특히 관련된 내용은 ‘교육내용의 적정화 및 통합 교육’, ‘민족 공동체 의식의 고양’의 부분이었다.
제4차 교육과정에서 국사는 독립 교과로 남게 되었고, 세계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회과에 통합되어 운영되었다. 중학교에서는 국사가 2, 3학년에서 주당 2시간씩 배당되었다. 사회과는 사회Ⅰ에 지리와 일반사회, 사회Ⅱ에 세계사와 지리, 사회Ⅲ에 일반사회와 세계사를 편성하는 통합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세계사는 중학교 2, 3학년에 총 2~3시간 배당되었다. 고등학교에서 국사는 공통 필수로서 6단위로 운영되었다. 고등학교 사회과는 사회1(정치·경제), 사회2(사회·문화), 세계사, 지리1(국토지리), 지리2(인문지리)로 편성되었다. 세계사는 사회과 속에서 인문계 4단위, 자연계 2단위가 배정되어 제3차 교육과정에 비해 비중이 줄었다.
제4차 중학교 국사과 교육과정의 교과 목표는 “한국사의 발전 과정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파악하여,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확인하며, 새로운 민족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게 한다.”라고 제시되었다. 고등학교 국사과에서는 “한국사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통하여 민족 사관을 확립시키고, 우리 역사에 대한 긍지를 배양하며, 자주적인 태도로 민족 중흥에 이바지 하게 한다.”라는 교과 목표가 제시되었다. 제4차 교육과정에서도 이전 교육과정과 마찬가지로 국사 교육을 통해 한국사의 자주성 및 주체성을 강조하고, 민족 사관을 확립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4차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1982년 편찬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상·하권이 분리되었으며, 교과서 분량은 더욱 늘어났다. 중학교 국사는 상권 183쪽, 하권 188쪽, 총 371쪽이었으며 고등학교 국사는 상·하권 각각 178쪽씩으로 총 356쪽이었다. 삽화, 지도, 도표 등 학습 보조 자료의 많아졌으며, 이들 자료의 교육적 효과도 고려되었다. 학습 자료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단일 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충분한 자료집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제4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교과서는 상권에 ‘1) 우리 나라 역사의 여명, 2) 삼국의 형성과 발전, 3) 통일 신라와 발해, 4) 고려 시대의 생활, 5) 조선의 발전’의 5개 대단원으로, 하권에 ‘1) 조선 사회의 새 동향, 2) 근대화의 시련과 자주 운동, 3) 일제 침략과 독립 투쟁, 4) 대한 민국의 성립과 발전’의 4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즉, 중학교 2학년에 전근대사 5개 단원, 3학년에 근현대사 4개 단원이 편성되어 근현대사 서술이 크게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학교 국사 교과서는 정치사 중심의 통사를 서술하도록 한 방향에 따라 대체로 정치, 대외 항쟁 등을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었다. 조선 후기, 특히 실학을 근대의 기점으로 설정하였다. 조선 후기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 제기된 내재적 발전론, 자주적 근대화론 등을 수용한 결과이다. 개화기 및 식민지 시대에서는 민족의 수난과 극복의 역사를 더욱 강조하여 서술하였다. 개화기에 해당하는 ‘근대화의 시련과 자주 운동’의 대단원에는 교육과정에서 3개의 중단원이 제시되었으나, 교과서에는 ‘1) 흥선대원군의 정치, 2) 개화와 척사의 대립, 3) 동학운동과 갑오경장, 4) 자주운동의 전개, 5) 민족의 자각과 근대 문화의 성장, 6) 근대 시설과 경제 생활의 변화’라는 6개의 중단원으로 크게 늘었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 서술도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강조하면서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3개의 중단원이 교과서에서는 5개로 늘었다.
제4차 교육과정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배층 위주의 정치사, 제도사 서술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중의 생활이나 입장을 무시한 채 지배층 위주의 사관과 역사서술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역사발전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민란의 원인에 대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한 채 단지 탐관오리의 부패 탓으로만 돌리는 등 민중 의식의 성장이라는 측면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되었다.
제4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상권에 ‘1) 고대 사회의 발전, 2) 중세 사회의 발전, 3) 근세 사회의 발전’의 3개 대단원, 하권에 ‘1) 근대 사회의 태동, 2) 근대 사회의 성장, 3) 현대 사회의 발달’의 3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의 시대 구분을 명시하여 역사를 발전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3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시대 구분을 시도하면서도 고려 사회와 조선 사회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제4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조선 전기가 고려와 다른 사회라는 점이 더욱 강조되었고, 이러한 관점에 따라 고려 시기를 ‘중세 사회, 조선 전기를 ‘근세 사회’로 설정하였다. 중학교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 실학을 근대의 기점으로 삼고 있는데, 근대에 해당하는 대단원은 2개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조선 후기를 ‘근대사회의 태동’이라는 단원으로, 그 이후를 ‘근대 사회의 성장’이라는 단원으로 설정한 것이다. 국정화 이후 국사 교과서가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도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근현대사의 비중이 확대되었다. 근현대사 서술 내용 역시 민족 수난과 극복의 역사가 중심이었다. 이러한 면이 가장 분명히 드러난 부분은 식민지 시대에 대한 서술이다. ‘근대 사회의 성장’의 단원 개관에서는 “1910년 이후의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 민족 운동을 탄압하고, 경제적 착취를 강행하며, 한국 사회와 문화를 해체시켰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 문화를 수호하면서 1919년에는 3·1운동을 일으키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한 항쟁을 계속하여, 1945년에는 제2차 세게 대전의 종말을 계기로 민족의 광복을 맞게 되었다.”라고 하여 ‘시련과 극복’을 강조하였다. 식민지 시대에 특히 강조되어 서술된 부분은 대한 민국 임시정부였다. 제3차 교육과정에서는 임시정부 수립 사실과 연통제의 초기 활동을 간단히 언급한 정도였으나, 제4차 교육과정에서는 민주 공화제의 정통 정부, 국내외 독립운동의 중추 기관, 국내외에 걸쳐 통제력을 가진 정부 등으로 설명되었으며, 서술 분량도 크게 늘었다. 광복군에 대해서도 이전 교과서와 비교할 때 내용이 강조하여 서술되었다. 반면 식민지 시대 좌파와 연관된 민족운동, 사회 운동은 비중을 줄이거나 의의를 축소하여 서술하였다. 부르주아 계통의 계몽운동, 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을 민족 운동의 주류로 서술하고 농민운동, 노동운동과 같은 민중 중심의 민족 운동을 배제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운동에 대한 서술을 금기시했던 것이다. 제4차 국사 교과서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이전 교과서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1종 국사 교과서 역시 문교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심의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국정 교과서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일반 지침에서 새 교과서 내용이 교육목적과 목표, 국사 국책과 일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국사 교과서에서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시련과 지배층이 중심된 극복을 강조함으로써 반공 체제와 독재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