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초등대한역사(初等大韓歷史)』 는 정인호가 편찬하고 장세기(張世基)가 교열하여 1908년 옥호서림에서 간행한 초등용 한국사 교과서다.
국한문혼용체로 총 176면으로 편찬되었으며 37개의 삽화와 역사지도를 함께 게재한 최초의 시각적인 한국사교과서다. 1908년 교과용도서의 검정규정이 발표된 후 학부불인가 교과용도서, 검정무효 및 검정불허가 교과서도서로 분류되었다.
2. 저자
정인호(鄭寅琥 : 1869년∼1945년)는 조선말기~일제시기에 활동했던 출판인, 민족운동가이다. 정인호(鄭仁昊)라고도 한다. 동래(東萊) 정씨로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구한말 경상북도 청도군수를 지냈다. 1906년 옥호서림(玉虎書林)이란 출판사를 운영하며 근대교과서를 간행하는 등 교육계몽을 위한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일제시기 군수로 재직하다가 사직하고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거족적으로 투쟁한 3⋅1운동을 경험하고 나서 동지 장두철(張斗徹)과 뜻을 합쳐 단원 20명을 규합하여 구국단(救國團)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때 나이 50세로 동지들에 의해 동단의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구국단의 주도세력은 1919년 4월 이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임시정부와 연계된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장두철을 상해에 파견해 임시정부의 요인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서병호(徐丙浩) 등을 만나 군자금지원방법을 논의하였다.
임시정부 지원책을 실행하기 위해 단장 정인호는 단원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에 나섰다. 우선 서울 인의동 자택에 은밀히 활판인쇄기를 설치하고 군자금 모집에 필요한 각종 문서문권을 인쇄하였으며,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한 후 이를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그러나 우체국을 이용해 송금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이 발각되었고 1921년 3월 20일 정인호와 단원들이 일제경찰에 체포당하였다. 그해 12월 19일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1922년 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형기를 다 마치고 출옥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최신초등소학(最新初等小學)』(1908, 옥호서림)과 『초등동물학교과서(初等 動物學敎科書)』(1908, 교동우문관인쇄), 『초등식물학(初等植物學) 全』(譯編, 1908), 『최신고등대한지지(最新高等大韓地誌)』(1909, 옥호서림) 등의 교과서와 『국가사상학(國家思想學)』(역술, 1908, 우문관인쇄), 『헌법요의(憲法要意』(1908, 우문관인쇄)등을 펴냈다.
3. 발행의도
『초등대한역사(初等大韓歷史)』는 정인호가 편찬하고 장세기(張世基)가 교열하여 1908년 옥호서림에서 간행한 초등용 한국사 교과서다.
교열자 장세기는 서(序)에서 책의 편집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교육에 정도(程度)가 있고 학년에는 계급이 있다. 정도는 가깝고 먼 것이고, 계급은 비루하고 높은 것이니, 그 계급에 따라 등급을 정하는 것이 가르치는 집안의 규모이다. 대한역사를 초등으로 지칭한 것은 중등과 구분됨이 있기 때문이니, 비유하자면 우리가 어린아이에서 청년이 되고 청년에서 노인이 되는 것과 같아서 서로 뒤섞여 혼란스럽게 하여 질서가 문란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친구 정인호가 학계 여러분들을 위해서 본 역사서를 편집하고, 내가 한마디를 보태서 책머리를 갖추었으니 책의 줄거리[梗槪]에 따라 그 의미를 돕고자 한다.”
즉 초등학생들에게 역사 교육을 시킬 때 중등의 역사교육과 연계될 수 있도록 유기적인 관점에서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편찬하려는 취지로 초등용 교과서를 편찬하였다는 것이다. 정인호는 이러한 의도에 맞도록 당시의 다른 한국사 교과서와는 다른 편집체제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예컨대 한국 역사상의 중요한 인물에 대한 인물상이나 중요한 역사사건에 대한 삽화 및 역사지도, 그리고 풍습에 대한 삽화를 많이 수록하여 어린이들의 역사이해를 돕는 구성으로 편집하였다. 저자가 편찬한 교과서 중 다수가 초⋅중등용인 것은 정인호의 국민교육상 기초적인 초등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동시기 국권회복을 위한 근대화추진을 위해서는 먼저 국민지식의 계몽이 중요하다는 계몽운동가들의 인식이 깔려있다고 하겠다.
4. 체제와 서술 방식
연활자본(22.5*15.5㎝)의 국한문혼용체로 인쇄되었으며 전체 분량은 176면이다. 시기는 단군부터 조선시대의 마지막 왕 순종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책의 구성은 장세기가 쓴 서, 목록에 이은 본문으로 이루어졌다. 본문은 단원마다 주제별 문제에 따라 편(篇), 장(章), 절(節)로 구분하여 알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전체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1편 상고(上古) :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衛滿) 삼한(三韓) 부(附)고조선과 삼국도(古朝鮮及 三國圖) 삼한결론(三韓結論)
제2편 중고(中古) :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가락국(駕洛國) 가야국(伽倻國) 발해국(渤海國) 태봉(泰封) 후백제(後百濟)
제3편 근고(近古) : 고려(高麗)
제4편 현세(現世) : 본조(本朝)
책의 서술체제는 새로운 서구의 근대 역사 서술체제를 받아들여 편찬한 현채의 『동국사략(東國史略)』의 틀을 빌어 왔지만, 구체적인 내용구성은 차이를 두었다. 각 시대별로 절을 나누고 그 절의 내용을 한마디로 설명해 줄 사언(四言)의 한자어로 제목을 붙였다. 역대 왕조의 역사에 따라 절을 구분하였지만 분야별로 내용을 나누어 서술하지는 않았다. 전 분량을 3편, 8장, 131절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종래 교과서와 달리 전 시기를 상고, 중고, 근고, 현세로 시대구분한 것은 『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의 태고, 상고, 중고, 근세의 시대구분법을 따른 것이다. 다만 동국사략의 ‘태고’를 ‘상고’로, ‘상고’를 ‘중고’로, ‘중고’를 ‘근고’로, ‘근세’를 ‘현세’로 각각 한 단계씩 올려 잡아 명칭과 시대규정상의 차이를 두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면은 당시 상고, 중고, 근세 등의 시대구분법이 한국사의 각 시기에 부합된 시대 명칭을 설정할 수 있는 일정한 이론적 체계로 확립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사 인식에서는 원칙적으로 단군조선, 기자조선, 마한으로 이어지는 마한 정통론을 따르고 있다. 또한 위만조선에 대한 서술의 경우 2장 기자조선 항목의 5개 절 가운 데 제4절 ‘기준(箕準)이 남으로 피하다 〔箕準南避〕’와 제5절 ‘위만(衛滿)조선’을 두어 기자조선을 이은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삼한정통론을 취하고 있지만 각국의 발전내용은 별도로 독립시켜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삼한에 대한 역사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을 각각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서술하였으며, 삼국의 성립과정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특히 2편 4장의 5국(國)중 1절 ‘김수로왕(金首露王) 가락건국’, 4절 ‘뇌실주일 가야건국’, 5절 ‘대조영 발해건국’, 6절 ‘김궁예 건국태봉’, 7절 ‘견훤 건국후백제’ 등의 절을 두어 가락, 대가야, 발해, 태봉, 후백제의 5개국을 차례로 서술하고 있다. 이런 점은 종래 신라 중심의 연대기적 역사서술 방법에서 벗어나 민족사의 활동내용을 총망라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근대적인 서술의 지향을 엿 볼 수 있다.
전체의 연도 표시는 융희 원년(1907)을 기준으로 이를 역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5. 내용과 서술의 특징
책의 내용을 살피면 첫째, 정치사 분야의 서술이 이전 교과서들과 달라졌다. 즉, 종래 왕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민족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인물에 초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즉 국왕보다는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명장이나 충⋅효와 지조로 이름난 인물, 그리고 민족문화 발전에 공헌한 인물에 대한 내용이 더 많다. 예를 들면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울 때 무공을 세운 을지문덕⋅강감찬⋅김종서⋅이순신⋅임경업⋅김덕령 등에 대한 서술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역사적인 인물을 강조하는 서술기법은 당시 풍미했던 계몽운동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던 ‘위인영웅전기’의 간행이란 일반적 경향과 관련지어 볼 수 있는데, 즉, 1905년 이후 국권상실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이를 해결하려는 역사가들의 시대인식이 반영된 역사보기의 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통사 속에 정치적 변천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의 각 분야도 망라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즉, 정치사 분야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문화사와 사회사분야의 내용을 상당히 반영하여 역사서술의 근대성을 엿 볼 수 있다.
셋째, 각 시대에서 역사상 중요하다 여긴 인물의 행적이나 인물모습을 삽화로 그려 서술부분에 배치하여 서술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한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예컨대 제1편의 「동국(東國)을 창립하신 단군」을 비롯하여, 제4편 마지막의 「황태자전하」에 이르기까지 각 주제를 그림으로 묘사한 37종의 삽화를 게재하는 편집을 시도한 것이다. 아울러 「고조선과 삼한의 그림」 과 「삼국정립도(三國鼎立圖)」 등의 당시 세력판도를 시각적으로 파악하도록 역사지도도 첨부하였다. 이러한 교재편집은 당시의 다른 교과서와 다른 차원의 구성으로 초등학생의 수준에 맞도록 시각적 교육 효과를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자못 크다. 특히 이런 지도는 이 교과서에만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넷째, 서술에 있어 지명이나 사건 등에 대한 완벽한 고증과 이해를 위해 부수적인 사항을 주로써 기록한 점이 주목된다. 예컨대 고대사 부분에서 지명에 관한 고증을 기록하였으니, 작은 글씨 2행으로 그 위치를 현재의 지명과 연결시켜 정리해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1904년 이후 일본과 체결한 각종 조약에 대한 서술에서는 각 조약의 내용 전체를 세주처럼 작은 글씨로 기록하여 조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서술하였다. 1904년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1905년의 ‘을사조약’, 1907년의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등 조약내용 전체를 주로 자세히 서술해 두었다.
다섯째, 내용상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서술이 많다. 특히 한일관계에서 그러한 양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과 의병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 4편의 128개 절 가운데 46절~58절에 이르는 13절의 분량 (10%정도)에 달하는 지면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이순신과 거북선의 삽화를 「창조 귀선한 이순신의 상」이란 제목으로 한 장 전체에 게재하였다.
여섯째,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지식인들과 민중의 민족운동을 중요시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을사조약의 체결에 반대하는 각종 움직임과 민영환의 유서는 물론 그의 삽화와 그를 기리는 전설도 함께 서술하여 구국운동을 강조하였다. 또한 1907년 헤이그밀사 이준 등의 활동, 매국노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군인들의 항거 등의 내용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상의 특징을 통해서 본 이 책의 서술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용이지만 이 시기의 다른 초등교과서 보다 내용이 깊이 있고 구체적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민족의 활동을 망라하고, 이를 인과적으로 서술하려던 점 등은 이 책이 근대 역사학의 서술방식에 기초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삽화를 많이 수록하여 학습효과를 높였으며, 주요사건관련의 역사지도를 처음으로 그려 넣은 최초의 역사교과서였다.
셋째, 근대 이후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을 많이 다루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동시대의 다른 초등교과서가 강화도조약 이후의 역사를 회피한 것과는 달리, 24면에 걸쳐 장황하게 서술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한 점에서 반일적, 자주적인 성격이 강한 교과서였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1908년 교과용도서의 검정규정이 발표된 후 학부불인가 교과용도서, 검정무효 및 검정불허가 교과서도서로 분류되어 교재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후일 출판법에 의하여 발매반포금지도서로 분류되었다.
6. 의의와 평가
갑오개혁으로 근대적 교육제도가 도입되고 근대적 학교가 설립되면서 학부의 국사교과서 편찬을 시작으로 1910년까지 20여종에 달하는 관찬, 사찬의 한국사교과서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1905년 을사조약이후 일제의 통감정치 하에서는 일제에 의한 교육통제 및 교과서통제정책에 따른 교과서들은 민족적 의미나 자주성을 띤 내용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간행된 것이 대다수였다. 그 중 초등용 교과서에서는 분량도 적고 국한문으로 간략하게 구성한 경우가 많았으며, 1876년 개항이후의 역사적 사실은 다루지 않았다. 게다가 1908년 이후 학부의 검인정을 받은 교과서들은 민족적, 자주적인 입장을 지키기 보다는 일제의 교과서통제정책에 순응하는 교과서를 편찬하는 방침을 폈다. 따라서 일제의 한국에 대한 침략이 자행되던 사건인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그리고 통감정치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서술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초등대한역사』는 당대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다양한 민족운동에 대한 기사와 일제의 침략상을 내용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덧붙여 초등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37개의 삽화와 역사지도를 함께 게재하여 최초의 시각적인 국사교과서를 만들었다는 데서도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다만 충과 효를 강조하고 권선징악적 관점에 선 역사서술의 자세가 남아 역사교과서라기 보다는 도덕교과서 같다고 한 평가가 한계로 지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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