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지를 편찬하려는 노력은 세종 때의 「신찬팔도지리지」를
비롯하여 단종 때의 「세종실록지리지」, 양성지의 「팔도지리지」, 그리고 성종 때 노사신 · 서거정
· 양성지 등의 「동국여지승람」 편찬으로 이어졌다. 이 중에서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대표적 지리서로서 성종 9년(1478)에 양성지가 「팔도지리지」를, 서거정이 「동문선」을
편찬하여 올리자 왕이 송나라 축목이 편찬한 「방여승람」의 예에 따라 시문을 지리지 속에 넣어서
다시 편찬하도록 하여 성종 12년(1481)에 간행된 지리서이다. 그 후 성종은 이 「동국여지승람」을
반포하지 않고 김종직 등의 사림 관료들에게 다시 개찬하게 하였다. 이어서 연산군 때 임사홍 등의
수정을 거쳐 중종 때 이행 등이 누락된 사항을 증보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 55권을 완성하였다(1530).
처음에 서거정 등의 훈신들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여 국방과 경제에 관한
사항을 많이 수록하였으나, 뒤에 김종직 등 사림 관료들이 개찬한 것은 행정적 편람에 적합하도록
만든 지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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