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 대왕 세조
 
  조선의 건국과 함께 본격적인 불교 배척의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나 태조는 개국 초부터 불교를 탄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척불 정책에 휩쓸리지 않았다. 숭유억불 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태종 때부터였다. 태종은 궁중의 불사를 폐지하고 사원의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242개 사찰만 남기고 사원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도첩제를 실시하여 승려를 제한하였다. 태종의 뒤를 이어 세종 역시 억불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였다. 세종은 불교 종단을 선종과 교종 양종으로 통폐합하고 사찰을 36개로 줄이고 사찰의 승려 수와 토지를 축소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말년에 불교를 신봉하여 유생들의 극심한 반발을 받았다.
  본래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세조는 즉위하자 배불 정책을 외면하였다.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세조는 고승들과 교유하고, 왕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보상절 등 불서를 짓고 사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도갑사와 같은 사찰을 중창하고,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하여 월인석보를 출간하였으며, 불교 음악인 영산회상곡과 불교 무용을 만들었다.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많은 불전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하였으며, 태조가 세웠던 흥덕사터에 대원각사를 세우게 하고, 대리석으로 원각사 10층 석탑도 세웠다. 나아가 전국에 걸쳐 수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오대산과 금강산을 찾아 불공을 드리기도 하였다. 세조 때까지 가혹하였던 승려에 대한 정책을 완화하여 승려의 권익을 보장해 주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