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서민 문학 중 변화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거기서 삶의 지표를 나름대로 형성하고자 한 가장 두드러진 예가 판소리이다. 판소리의
형성 시기는 대체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로 잡을 수 있다. 판소리 광대는 고기잡이철이면
어촌으로, 추수기면 농촌으로 돌며, 구전 설화나 사실들을 토대로 하여 자신들이 직접 서사화한
판소리 사설을 창과 아니리, 발림 등을 통하여 공연했다. 이 때, 판소리 광대는 그들 계층의
현실 의식 뿐만 아니라 중심 관객이었던 서민 계급들의 현실적 문제 의식을 수용하여 사건을 이끌어
가고 인물들을 형상화함으로써 판소리의 현실 수용의 폭을 넓혔다.
예컨대 '흥부전'은 흥부와 놀부의 대조적 성격과 처지를 드러내었다가 마침내 화해하게 함으로써
형제간의 우애를 주제로 정립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당대 현실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어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춘다. 먼저 온갖 품팔이를 하다가 마침내 매품까지 팔게 되는 흥부의 모습
그리는 과정에선 땅없는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 준다.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놀부의 모습을 통하여 돈에 눈뜨기 시작한 당대 사회와 그 속의 이해 타산적인 인간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흥부전'은 이러한 현실적인 변화에 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 사이에는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윤리인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이 있고 또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다시 말해, 윤리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구체적 일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보여 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