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12월 철종이 재위 14년 만에
후사가 없이 죽자, 왕위 계승 문제가 제기되었다. 60여 년 동안의 세도 정치하에서 많은 왕족이
정치적으로 희생되어 철종의 뒤를 이을 만한 왕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왕실에서 후계자를 지목할 수 있는 가장 웃어른은 순조의 아들로, 일찍
사망한 효명 세자(익종으로 추존)의 비인 신정 왕후 조씨였다. 오랫동안 안동 김씨의 세도에 눌려
지내던 풍양 조씨 집안의 조대비와 불우한 종친으로서 역시 안동 김씨에게 수모를 당해 오던 흥선군
이하응의 결속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에 조대비의 후원으로 흥선군의 둘째 아들이 익종의
대를 잇는 것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당시의 왕실 계보를 보면 흥선군은 정조의 이모제(異母弟)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간 인평 대군의 6세손 남연군의 넷째 아들이다. 흥선군은 철종과 순조의 아들인 효명 세자와
같은 항렬이었으므로, 흥선군의 아들이 익종을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던 것이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26대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군 이하응은 살아 있는 대원군으로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