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운동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적인
민족 국가를 확립하려고 했던 움직임이다. 그 바탕이 된 개화 사상은 안으로는 북학파의 사상을
계승한 통상 개화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밖으로는 청나라의 양무 운동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에 형성된 문명 개화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개화 사상이 형성된 시기는 대체로 1860년대에서
1870년대이다. 박규수는 할아버지 박지원의 북학 사상을 계승하여 개화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중인 출신인 오경석과 유홍기[일명 유대치]도 개화 사상 형성에 기여하였다. 오경석은 역관(譯官)으로
청에 자주 왕래하면서 서양 문물을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는 청에서 가져온 새로운 서적과 견문을
한의사였던 유홍기에게 전해 주었고, 유홍기는 이를 김옥균 등 젊은 개화파에게 소개하여 초기 개화
사상을 형성하였다. 온건 개화파는 주로 중국의 양무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이에 비해 급진 개화파는 주로 일본의 문명 개화론의 영향을 받아 입헌 군주제 등 정치 · 사회적으로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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