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 · 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민주당 신구파의 파벌 싸움으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군부 내에서는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자유당 정권하의 군 고위층에 대한 정군을 건의하는 등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쿠데타 군은 약간의 사격전 끝에 한강교를 무난히 돌파하여 서울 시내로 진입하였다. 쿠데타 군은 이날 상오 5시 서울중앙방송국 첫방송을 통하여 혁명 공약 6개항을 밝혔다. 장도영 참모 총장은 그날로 군사 혁명 위원회 위원장직에 올랐고, 장면 총리는 5월 18일 제69차 임시 각의에서 내각 총사퇴를 결의하고 군사 혁명 위원회에 정부를 이양하였다. 장도영이 반혁명 사건으로 체포된 뒤부터 박정희 소장이 명실상부한 군사 혁명 정부의 실권자로 부상하였고, 이후 헌법 제정 및 개헌을 통하여 18년간 최고 실권자로서 국정을 책임맡았다. 5 · 16 군사 정변은 결과적으로 민족사적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며 우리 민족의 자립적 근대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군의 정치 개입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겼고, 관료 권위주의 체제를 뿌리내리게 하였으며, 인권 탄압과 빈부 격차를 비롯한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