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신고
| 2355 | 가례색 오류 답변에 대 | ㆍ작성자 : 가례색 내용 오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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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명 : 한국 문화사 | ㆍ오류 유형 : 내용 오류 | |
| ㆍ자료위치 : | https://contents.history.go.kr/id/km_023_0050_0020_0020_0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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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태조나 정종 때에는 제도가 미비한 상태였기에 가례색에 의한 간택은 없었다. 단지 몇몇 대신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딸을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정식 가례색을 설치하여 간택하고 빙례로 맞아들인 정식 후궁은 태종의 정의 궁주(貞懿宮主)부터였다."
오류 지적 내용: 본문의 설명은 역사적으로 가례색에 의한 간택이 정의궁주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는 설명이고, 오류 지적은 태종의 명에 의해 가례색을 파하였으므로, ""정의궁주는 가례색에 의해 간택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답변은 "태종실록3권, 태종 2년 3월 7일 기사를 보면 정의궁주 간택시에는 가례색이 파하기 이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본문과 같이 설명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본문 내용 및 오류의 내용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 답변으로 보인다. 본문의 내용은 가례색을 파한 시기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조선의 역사상 "가례색에 의해 간택된 최초의 인물이 정의궁주"라는 서술인데,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가례색을 파하고 궁중 나인만 보내서 정의궁주를 맞이하였으므로, "정의궁주는 가례색에 의해 간택된 최초의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틀린 서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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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등록일 : 2025-1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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