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1년(1352)에 이색(李穡, 1328~1396)
은 상중에 있으면서 상서하기를 “상중(喪中)에 있는 신(臣) 색이 말씀드립니다. 저는 들으니 ‘나라가 무사할 때는 공경(公卿)의 말도 기러기 털보다도 가벼우나, 나라에 사고가 생기면 평범한 사람의 말도 태산보다도 무겁다’고 합니다. 저는 미천한 필부로서 당돌하게도 감히 말씀을 드리니 그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바입니다. 그러나 물 한 방울과 티끌같이 미미한 것도 높은 산과 깊은 바다를 이루는 바탕이 되며, 소를 먹이는 목동과 나무하는 사람 같은 하찮은 사람의 말도 성인(聖人)은 들을 것이 있다고 하니, 만일 전하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종묘와 사직에 큰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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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듣건대 전하는 부처를 숭배하는 정성이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돈독하다 하시니, 나라의 복이 영원하도록 비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부처는 지극히 성스럽고 공정하여, 극진히 받든다고 하여 기뻐하거나 소홀이 대한다고 해서 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그 경전에는 분명히 ‘보시하여 공덕을 쌓는 것보다는 경전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 말씀을 외우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나랏일을 살피시거나 쉬시는 틈틈이 방등(方等)
대승불교의 경전을 총칭한 용어
에 주목하시거나 돈법(頓法)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각 깨닫는 돈오(頓悟)에 대한 가르침
에 유의하시든지 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윗사람의 행동을 잘 모방하므로, 윗사람이 재물을 낭비하면 아랫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하게 되는 법이니, 폐해가 커지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데 신중해야만 합니다. 공자가 ‘귀신은 공경하면서 멀리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저는 부처에게도 역시 이렇게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전하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틀림없이 생명을 잃게 될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이라도 잘못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한 마디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생각해보건대 나라의 융성과 쇠퇴가 서로 관련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2대에 걸쳐 어린 임금이 즉위하시고 신하가 정권을 잡은 탓에 국가 규율과 질서가 해이해져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총명하시고 관대하시며 강인하셔서 가히 나라를 잘 다스리실 수 있는 자질을 갖추셨는데, 지금 나라가 매우 어지러워 백성들이 잘 다스려짐을 그리워하고 있으므로 가히 나라를 잘 다스릴 만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어진 사람의 등용을 목마르듯 해야 하는데 아직 어진 사람을 초빙하는 데 쓸 예물을 마련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국정(國政)을 보살피기에 바빠야 할 것인데 아직 궁궐 안의 횃불이 밤에도 켜진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하니 어진 사람과 유능한 사람이 어찌 남김없이 등용되었으며, 간악하고 부정한 자들이 어찌 모조리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한 가지 정책도 실시되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며 부질없이 백성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뒷걸음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과 같고 수레 머리를 남쪽으로 향해 놓고 북쪽의 연경(燕京)으로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참으로 전하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주역(周易)』 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은 한결같이 힘차니, 군자(君子)도 이와 같이 스스로 노력해 쉬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신 수양의 요체와 치적(治績)을 올리는 방법으로 이만한 게 없으니 전하께서는 마음 속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중략)……
(공민왕
5년) 시정(時政)에 대한 8개 항목을 적어 국왕에게 바쳤는데, 그 하나는 정방(政房)
을 폐지하고 이부와 병부가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왕이 그의 건의를 기쁘게 받아들여 드디어 이색
을 이부시랑(吏部侍郞) 겸 병부낭중(兵部郞中)으로 임명해 문무 관리의 선발을 주관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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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권115, 「열전」28 [제신] 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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