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을 마련하여 큰 병과 작은 병을 고치게 하는 것은 어진 정치의 한 가지 일이다. 예전에 신농씨(神農氏)가 기백(岐伯)으로 하여금 풀 잎사귀와 나무껍질을 맛보아서 병을 고치게 하였으며, 『주례(周禮)』에, “의사가 의약에 대해 다스려서 약품을 모아 병 고치는 일에 이바지한다” 하였고, 그 뒤에 의약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유부(兪跗)·편작(扁鵲)·의화(醫和)·의완(醫緩)의 무리가 전기(典記)에 많이 나타나긴 하였으나, 그 저서는 모두 전하지 못하였다.
당나라 이후부터는 그 처방문(處方文)이 계속 증가하였는데, 처방문이 더욱 많아질수록 그 기술은 더욱 저하되었으니, 대개 상고 때 용한 의원은 단지 한 가지 약을 가지고 한 가지 병을 고쳤는데, 후세의 의원은 여러 가지 약을 섞어서 행여 효력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당나라의 유명한 의원 허윤종(許胤宗)은, “사냥하는데 토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온 들판에다 널리 그물을 치는 격이다” 하고 희롱하였으니, 참으로 좋은 비유이다. 여러 가지 약을 모아서 한 가지 병을 고치는 것이 한 가지 약을 알맞게 쓰는 것만 못한데, 다만 병을 똑바로 알고 한 가지 약을 제대로 쓰기가 어려울 뿐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멀리 떨어져서 이 땅에서 생산하지 않는 약은 구하기 어려운 것을 몹시 걱정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풍속이 흔히 한 가지 풀을 가지고 한 가지 병을 고치는 데 특효가 있다. 그 전에 삼화자(三和子)의 『향약방(鄕藥方)』이 있었는데, 아주 간단한 요령만 뽑아 놓아서 보는 사람이 너무 소략한 것이 결점이었는데, 요전에 지금의 판문하(判門下) 권중화(權仲和)가 서찬(徐贊)이란 사람을 시켜 거기다 여러 처방문을 보태게 해서 『간이방(簡易方)』을 만들었으나, 그 책이 세상에 많이 퍼지지 못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주상 전하는 어질고 성스러운 자질로 하늘의 명(命)을 받아 나라를 세우시고,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생각이 어디에나 미치셨으나, 항상 가난한 백성이 병이 나도 고칠 수 없는 형편임을 염려하시고 몹시 측은하게 여겼다. 좌정승 평양백(平壤伯) 조준
(趙浚, 1346~1405) 공과 우정승 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 1332~1407) 공이 위로 임금의 마음을 본받아서 서울에다 제생원(濟生院)을 설치하고 노비
를 두고 본국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채취해서 약을 제조하고 널리 베풀어서 백성의 편리를 도와주자고 청하였으니, 중추(中樞) 김희선(金希善) 공이 그 일을 도맡았다. 각 도에도 또한 의학원(醫學院)을 설치하고 교수를 보내서 이 방문대로 약을 쓰게 하여 영원히 그 혜택을 받게 하였다. 또 그 처방문이 미비한 것이 있을까 염려하여 곧 권중화와 특명관(特命官), 약국관(藥局官)을 시켜서 다시 여러 처방문을 검토하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험한 것을 뽑아서 부문 별로 같은 편을 골라 한데 엮어 놓고, 『향약제생집성방』이라 하고 그 끝에 소와 말을 고치는 처방문도 붙였다. 김중추가 강원도 관찰사
가 되자, 인부를 모집하여 목판(木板)에다 그 글을 새겨서 책을 많이 인쇄해 널리 전하게 하였으니, 모두 구하기 쉬운 물건이요, 이미 경험한 처방문이다. 참으로 이 처방문만 잘 알면 한 가지 병에 한 가지 약으로 되는 것이니, 이 땅에서 나지 않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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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방(五方)은 모두 제각기 타고난 성질이 다르고 천리를 넘어서면 풍속이 같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평소에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시고 짜고 차고 더운 것이 모두 각각이니, 병이 나서 약을 쓰는 것도 다 다를 것이고, 반드시 중국 처방문과 꼭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먼 곳의 물건을 구하여 얻지 못한 채 병은 벌써 깊이 들었는데 혹시 많은 값을 주고 구했다 해도 그 물건이 오래되어 썩고 좀이 나서 약기운은 다 나갔으니, 그 지방에서 나는 물건의 기운이 그대로 있는 것만큼 좋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땅에서 나는 약(鄕藥)을 가지고 병을 고치는 것이 반드시 힘은 적게 들고 효력은 빠른 것이다. 이 처방문이 생김으로써 백성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어떻다 하겠는가.
전(傳)에 이르기를, “훌륭한 의사(上醫)는 나라도 고친다” 하였으니, 지금 밝은 임금과 어진 정승이 서로 만나 처음으로 큰 운수가 열렸다. 이들은 민들을 도탄에서 건지고 나라를 반석 위에 세우려고 밤낮없이 애써서 정치에 전념하였다. 나아가 더욱 백성을 활발하게 하여 나라의 맥박을 튼튼하게 할 것을 생각하였다. 이들은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와 나라를 풍족하게 하는 도가 본말이 아울러 시행되게끔 하고 대소가 모두 구비되게끔 하고, 의약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일까지도 정성을 다하였다. 원기를 보호하고 나라의 근본을 배양하기를 이토록 지극하게 하니, 그 나라를 고치는 일이 컸다. 어진 정치가 한 시대에 덮이고, 은택은 만세에 내려갈 것을 어찌 쉽사리 헤아릴 수 있겠는가.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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